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서 1월 6일 전하는 소식

녹색세상 2009. 1. 6. 20:45
 

어제는 낮 당번이 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상옥 꼭지가 와서 아침을 챙겨 주었습니다. 잠은 늘 일찍 깨지만 추워서 밖에 나가지 않으니 하루의 시작이 늦어만 갑니다. 청소년 수련관 뒷산이 상수리나무 위를 가리고 있어 8시가 넘어야 햇볕도 들어 조금 따뜻해집니다. 이래저래 몸을 움직이지 않을 핑계 거리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네요. 이런 걸 경계하지 않으면 한 없이 나태해 지고 말지요. 오후 4시 무렵 한겨레신문 기자가 취재를 왔습니다. 

 

▲ 달빛이 유난히 고와 ‘달빛고운 고을’이라 부른 달비골 안에 있는 월곡지. 이름 모를 민물고기가 많이 살고 있을 정도로 물이 맑다.


간단히 취재하고 사진 몇 장 찍고 갈 줄 알았는데 상수리나무 위까지 올라와 여러 장면을 찍었습니다. 사진부 기자라서 그런지 세심하게 찍는 걸 보니 심층 취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나무 위까지 올라오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있는 그대로 ‘어쩌다 보니 얼떨결에 올라왔다’고 했더니 ‘그러면 기사를 못 쓴다’며 좀 다르게 말해달라고 하니 조금 각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풍객들이 많은 11월에 오규섭 목사가 ‘한 달 단식기도로 농성을 시작해 등산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해 12월 이 엄동설한에 농성을 하고 있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청년시절부터 같은 길을 걸어 온 동지이자 선배고, 같은 교회 교인이라 뒤를 이었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평소 산도 좋아하고 앞산은 오래 전부터 다닌 정이 많이 든 산이고, 몇 분의 편리함 때문에 ‘환경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게 세계적인 추세고, 도심 한 가운데 이런 대형 구조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무식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라고 했습니다.


터널에서 빠져 나오는 매연은 이 동네 주민들이 마시고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등.... 인근 장미아파트에 올라가 야간 사진도 찍어야 하는 등 일정이 빡빡한 탓에 약간의 연출은 했지만 평소 천막에서 하던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나무 위 농성 천막’에 한글 사전이 두 권이나 보여 조금 의아해 하기도 하더군요. 한 장면을 제대로 찍기 위해 치열한 취재 경쟁을 하듯이 사진 몇 장 찍으러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의 나무 위로 올라온 기자 정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수리나무 위의 기념 진 찍어주겠다’기에 얼른 자세를 잡아봤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취재에다 전문가의 기념사진까지 선물로 받게 되었으니 나중에 아이에게 보내려 합니다. 취재를 다해갈 무렵 TBC방송에서 ‘동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녹화하러 왔습니다. 미리 연락은 받았지만 방송에 얼굴 알리는 게 불편해 극구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2월 중순에 방송이 나가고 방영시간이 밤 12시라고 해 얼굴처리 하지 말고 하라고 했습니다. 호주제 폐지 싸움을 시작으로 성매매 추방운동 등 방송 녹화를 몇 번 해 봤지만 제작진들이 늦게 도착한데다 좁은 공간에서 하려니 자연스런 장면보다는 연출이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문취재에 방송 녹화까지 하다 보니 오후에 해야 할 일을 못해 밤늦도록 작업을 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고 싸움이 장기간 지속될 때 보도하지 말고 사건 발생 초기에 알려야 불필요한 사회적인 비용 낭비를 줄일 텐데 우리 언론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갑갑하지요. 워낙 사건 사고가 많은 나라인데다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광우병쇠고기 문제로 나라 전체가 뜨거워져 취재 대상에서 빠진 탓도 있겠지요. 취재나 녹화만 있으면 절대 안 빠지고 그 시간에 나타나 머리 들이미는 모 선수가 어제는 안 보여 의아하더군요.

 

보기 불편한 사람이(?) 있는 탓도 있겠지만 몸으로 때우는 건 하지 않고 얼굴 파는 곳에는 물불을 안 가리는데 보이지 않으니 더 궁금했습니다. 재작년 12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힘든 후보 새벽 일정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낮에 시장을 돌 때는 나타나 들이대는 걸 몇 번이나 봐 신뢰를 할 수 없더군요. 성과물은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고 땀 흘린 사람의 몫이건만 그냥 열매나 먹는 게 아님을 모르는 어떻게 보면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새해 1월부터 태영건설에서 달비골에 벌목작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듣습니다.

 

각오하고 올라오니 별 걱정도 안 되어 졸지에 간 큰 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 엉성하기 그지없는 건설관련법 조차 지키지 않는 이 몰상식한 세상, 전형적인 정경유착에다 뒷거래가 공공연한 ‘민자유치사업’이라 대구시는 방관을 넘어 적극 비호하는 정말 웃기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게 서글프기만 합니다.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고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하건만 다 파괴해 버린 이 땅에 우리 자식들이 살아야 하니 부모 된 자로서 가슴만 아픕니다. 무능한 게 아니라 게을러 그냥 방치 했으니 응당 벌을 받아 마땅하죠. ‘못난 조상’이 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니 더욱 화가 납니다. 오늘이 ‘나무 위 농성’24일째 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