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그리스의 반란과 2009년 한국사회

녹색세상 2009. 1. 7. 23:42
 

취업난 민영화 등 국민들 불만 최고…한국과 닮은 그리스

 

 

‘아고라’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했던 아테네의 후손들은 2009년 새해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맞았다. 신다그마 광장과 국회의사당 앞, 오모니아 광장, 아테네 공대 앞 파티시온 거리와 엑사르히야 지역, 피살당한 소년 장례식이 이루어진 팔레오 팔리로 지역에서는 연일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10일에는 노동자총연맹과 공공노조연맹의 파업으로 24시간 동안 공항이 마비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는 은행과 고급상점, 각종 세금관련 서류가 있는 관공서를 공격하고 있고, 방송국과 고등학교, 대학을 점거하는 등 급진적이고 과격한 투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다양하다. 소년을 살해한 폭동진압부대의 해체와 경찰의 총기 휴대 금지 등 주로 이번 살해 사건에 국한된 요구를 내세운 이들도 있고,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반-테러법’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정부의 교육과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거나, 정부 타도와 전면 파업, 노동자들의 자주관리를 통해 자본주의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의 지난 촛불시위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제가 분출되었던 것처럼, 이번 그리스의 시위는 이질적인 운동세력과 대중을 하나의 흐름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의 시위 역시 우리의 촛불 사례처럼 다양하고 광범위한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 무조건 비폭력을 외친 한국 촛불과는 달리 그리스 시위대는 저항을 넘어 공공기관과 은행 점거 등 폭동으로까지 확산되었고, 그리스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 당국은 정국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희망은 시위 주력군인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자연스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만, 시위가 잦아들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시위대의 조기총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별다른 타협점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2009년 1월 9일에는 1991년 신민주당 청년지도자에게 살해된 키노스 템포너라스라는 젊은 교사의 추모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신민주당은 현 집권당이기도 하며 1991년의 사건이 이번 소년살해 사건을 상기시키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시위대는 템포러라스 추모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그리스 민중들의 분노를 단순히 경찰관의 ‘소년살해’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살해했기 때문에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 아니며, 미국의 남북전쟁이 샘 요새에서 한 발의 총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듯, 분노가 분출된 시발점이 사건의 원인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집단행동은 치밀하게 준비된 의도적 행위보다,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예측하지 못한 순간 폭발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민중의 저항은 몰락해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장송곡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그리스 사례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리스 민중들의 현실, 그리고 현 집권당인 신민주당의 정책대응이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어제에서 우리의 오늘을 읽을 수 있고, 그리스의 오늘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민중들의 저항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또 다른, 아니 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부의 집권으로 이어진 것은 우리의 경험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경향은 경쟁하는 두 거대 정당이 존재하고, 정치적 경쟁이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현실을 반대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구도에서는 쉽게 나타난다. 무엇을 실현하기보다 누군가를 반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광범위한 대중의 동의를 얻기에 수월하지만, 호랑이든 여우든 먹이사슬 아래쪽에 서 있는 이들의 살점을 노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스사회주의정당(PASOK)이나 신민주당(NDP)은 민중에겐 여우와 호랑이일 뿐이었다.

 

2004년 집권 이후부터 그리스 우파 집권당은 정부지출을 축소하고 은행, 항공, 통신, 전력회사 등 국영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 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2006년 12월 개발촉진법을 개정하고 국책사업 추진에 민간자본을 참여시켰고, 국가 소유의 부동산을 개발할 때도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면서 기업이윤에 대한 세율을 3년에 걸쳐 5~10퍼센트를 줄여 주었다. 당시 그리스는 유로화 채택에 따른 저금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최로 경기가 활성화 되는 등 경제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맞았다. 2003년 그리스의 GDP 성장율은 4.9퍼센트를 기록했고, 2004년 4.7퍼센트, 2005년 3.7퍼센트, 2006년 4.3퍼센트, 2007년 4퍼센트의 성장을 지속했다. EU 회원국 가운데에서는 꽤 높은 수준에 속한다.

 

  ▲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한국의 1980년대와 같이 새총을 사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그리스 시위대의 모습.


그러나 우리가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충분히 확인했듯이 단순히 GDP가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역시 경제성장의 성과는 모든 그리스인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다른 EU 국가에 비해서도 심각한 만성적인 실업문제는 그리스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4년 그리스 실업율은 공식 통계로만 10.5퍼센트에 이르렀으며, 조금씩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 청년실업문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정부가 등장한 이후 양적인 노동 유연성만이 강조되면서 파트타임 등 임시직의 일자리만 늘었을 뿐, 안정적인 직업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통상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에 비해 2~3배 가량 높기 마련인데,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공식 통계로만 30퍼센트에 가깝다. 이는 만성적인 청년실업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EU국가들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공식 청년실업률(20~29세)이 7퍼센트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현 그리스 청년세대는 부모세대보다 삶의 수준이 더 나빠지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5명 중 1명, 즉 200만 그리스인이 빈곤층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기대어 사는 청년층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리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나마 상황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이웃 나라로 이민을 택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젊은층이 이번 시위의 주력으로 등장한 이면에는 노동인력 유출을 심각하게 여긴 정부당국이 젊은이들의 이민 신청서를 장기간 처리해주지 않은 데 쌓인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의 대학정책은 거꾸로 갔다. 극심한 취업난에 대학졸업장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는데도 교육시장화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스 헌법은 사립대학을 금지하고 있고, 외국인을 제외한 대학생들의 학비는 전액 무료인데, 구집권당인 PASOK은 대학 민영화가 가능하도록 헌법조항 수정을 추진하다가 교수와 학생, 노조는 물론 PASOK 일반당원까지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결국 포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신민주당 정부는 2004년 집권 이후 대학 민영화 계획을 다시 추진했으며, 대학생들은 2006년 대규모 대학점거 시위로 이에 맞섰다. 2000년대 초반의 반전시위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오늘의 그리스 대학생들은 2008년 10월에도 동시다발 대학 점거 계획을 결정했다. 이런 대학생들의 점거 시위 계획은 2008년 10월 공공무문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그리스 노동자들의 대규모 총파업 시위와 맞물려 하반기 격렬한 대정부 투쟁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소년 살해 사건 직후 100여개의 고등학교와 15개의 대학이 시위대에 점거된 것은 돌발적이라기보다 계획된 것이었다.


어쨌든 연금개악ㆍ공공부문과 대학 민영화에 대한 반발이 고조되는 가운데 터진 집권당의 부패 스캔들은 그리스 민중의 인내심에 한계를 가져왔다. 집권당이 정부 소유의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와 수도원의 값싼 땅을 맞바꾸고 뒷돈을 챙긴 것이 드러난 것이다. ‘내각 총사퇴’와 ‘조기총선’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신민주당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은행에 28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은행이 시위대의 주된 공격목표가 된 것도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려 했던 은행과 역시 서민을 외면하고 은행만 살리려는 집권당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이런 국민들의 불만에 대한 그리스 정부의 대응은 우리 정부와 경찰청장처럼 공권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뿐이었다. 결국 피살된 소년은 우연히 선택되었을 뿐, 그리스에서의 반란은 이미 예정된 결과였다. 부패한 정부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정책,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 청년들의 심화된 불만은 그리스를 화약고로 만들어 버렸고,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던 세계 대다수 나라의 정부는 민중반란이 자국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고심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 민중들이 명박산성을 앞에 두고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놓고 허송세월했던 우리와 달리, 결단 있는 반정부 시위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었던 데는 과거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던 군부독재세력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1973년 학생저항이 일종의 ‘정신적 유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1973년 학생회 선거를 조작하는 등 정치공작활동을 펼친 것이 드러나자, 아테네 과학기술대학생들은 11월 14일부터 대학 점거 투쟁을 벌여 나갔다. 바로 다음 날,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30만 명의 그리스 민중들은 아테네에 집결했고, 아테네 과학기술대학생은 군사정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군사정부가 11월 17일 탱크를 동원해 대학을 점령하는 와중에 수많은 학생들이 살해되었지만, 8개월 후 군사정부는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1973년 학생들의 반란은 우리의 4월 혁명, 광주항쟁과 1987년 6월 항쟁 등의 민중저항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국민을 배반한 세력을 심판한 민중의 힘은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에서도, 12월의 그리스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까지 우리 대학생들은 여전히 바늘구멍에 희망을 걸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그리스 국민에 비해 ‘지나치게’ 평화주의자라는 점 뿐이다.


그리스와 한국의 미래는?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서민층의 극심한 생활고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정권, 다양하게 분출되는 대중의 저항을 오로지 억압적 공권력에만 의존하려는 정권은 결국 그리스에서 극도의 폭력시위를 낳았다. 지난 촛불시위에서 불탄 은행과 상점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촛불시위 조차 ‘불법폭력시위’로 규정한 이명박 정권의 눈에 그리스는 이미 생지옥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단지 비제도적인 집회ㆍ시위의 자유만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의회체제에서도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 살인의 위험이 있는 강력한 물대포를 맞아가면서도 ‘대통령과 대화하자’는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대. 비폭력과 무폭력을 구분하지 않아 정당방어 조차 폭력이라며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당하기만 했다.


12년만의 날치기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한미 FTA 비준안을 상정한 데 이어, 최저임금법, 국가정보원법, 통신비밀보호법,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 집시법개정안,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신문법 등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후퇴시키는 일련의 법안도 곧 줄줄이 강행처리할 태세다. 이런 법안은 정치세력 간 협상과 타협으로 통과 시기가 미뤄지고 있지만, 2009년 상반기 정부ㆍ여당과 국민 간의 관계가 최악으로 멀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정부여당의 강경드라이브는 4월 재ㆍ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해 놓을 건 다 해놔야 한다는 조급함이 만들어 낸 결과다.


애초에 국민적 합의는 포기했고, 할 수 있을 때 확고하게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닦아 놓겠다는 심산이다. 따라서 2009년 3ㆍ4월은 우연한 계기가 있건 없건 정부와 국민간의 갈등이 최고점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작년 12월 26일 총파업을 시작한 언론노조는, 언론마저 재벌이 장악할 수 있는 7대 악법을 통과시킨다면 ‘정권퇴진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선언했고, 기간제 사용기간을 3~4년으로 확대하고 파견대상을 전면 확대하는 비정규직법 개악과 한미 FTA,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등을 둘러싼 노동계의 불만이 연초부터 강하게 표출될 것이다. 이미 촛불시위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월 대학생들의 등록금 시위 등 잠재되어 있는 불만이 어디에서 어떻게 폭발하게 될지 불안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 상황은 마치 반란 직전의 그리스를 보는 듯하다.


만일 2009년에 대규모 민중저항이 다시 전개된다면 그 형태는 2008년 촛불시위와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조직되지 않은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평화적인 행진을 통한 여론 확대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2009년의 충돌은 조직된 대오와 공권력 간의 ‘난타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장본인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다. 미조직 대중의 평화로운 시위참여마저 철저히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구속과 연행을 감당할 수 있는 조직대오에게만 저항가능성을 허용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그리스에서와 같은 극단의 물리적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어 버렸다.


한국 민주진영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와 같은 충돌이 현실화될 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극단적인 대립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MB의 연대를 모색하는 조직된 진영(편의상 여기서는 ‘민주진영’이라 하자)은 크게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 번째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국운영을 저지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반MB 전선의 단결문제다. 먼저 민주적 리더십을 형성하는 과제를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지난 촛불시위에서처럼 단순한 의견 표출로는 불가능함을 이미 확인했다.

 

▲ 한겨레신문 허재현 기자가 경찰에 목에 졸린 채 강제 연행 당하고 있다. 기자에게도 일개 전경이 폭력을 휘두를 정도인 인권 후진국 대한민국 경찰. (사진: 오마이뉴스)


정부가 귀를 닫은 상황에서 민주진영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최대한 역량을 보전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여론을 지속시켜 나가면서 4월 재ㆍ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첫 번째다. 이것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가장 불투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선택은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어느 정도 허용해 주는 것을 전제로 하며, 대중의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언론악법과 마스크만 써도 현행법으로 잡혀가는 집시법 개악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런 조건에서 얼마나 선거에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순진함일 뿐이다. 언론사를 떡 주무르는 권력과 자본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정부의 독주를 지나치게 ‘인내하는’ 저항세력의 모습은 대중으로 하여금 정치적 냉소주의를 갖게 만들며, 경향적으로 낮아지는 투표율 속에서 촘촘히 뿌리박힌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는 거대 보수여당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줄 뿐이다. 만일 다시 한 번 대중저항을 조직하겠다면 정부의 물리적 억압을 돌파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지도력이 절실하다. 합법과 불법 사이, 가두와 광장 사이, 폭력과 비폭력 사이의 간극은 명박산성 만큼이나 견고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활동반경을 옭아매어 버린 지루한 논쟁들은 촛불을 꺼뜨린 여러 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현 정치세력 중 대중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나 단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지도력은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이 아니라 지난 촛불시위에서 확인된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힘의 발현이다. 민주진영이 해결해야할 두 번째 과제는 ‘단결’ 문제다. DJ가 자신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민주대연합’을 제시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민주진영 단결론은 민생민주국민회의의 출범 논쟁과 맞물려 2009년에도 민주ㆍ진보진영의 주된 화두가 될 것이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후보단일화’ 문제는 민주진영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이명박 정부에 맞선 반MB 전선의 확립과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반MB 진영의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다.


이 가능성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에서부터 민주당의 분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만일 정부여당과 민주당이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관계를 회복시킨다면 민주당의 분열과 운동의 급진화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고, 민주당과 정부여당의 대립관계가 확대된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노총 등 전형적인 민중진영 내의 논쟁이 심화될 것이다. 이런 구도는 1987년 이후 진보진영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던 연대ㆍ연합의 갈등과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으로, 그 만큼 한국 민주주의가 1987년 이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9년을 만드는 힘


그리스의 상황이 우리와 아무리 흡사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2009년이 그리스와 같을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설령 그리스와 같은 민중반란이 한국에서 재현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그리스에 버금하는 내부 모순과 사회적 갈등이 폭발직전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정부의 실정과 부패 스캔들, 그리고 국민의 저항에 폭력으로 응수한 정권을 목도한 그리스 민중들이 느꼈던 좌절감과 답답함은 2009년 초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다. 각종 공안기구가 부활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여론 형성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정권의 모습에서 이명박 식 선진화 정책에 대한 대중 저항을 어떻게 다룰지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2009년을 결정지을 변수는, 지난 2008년이 그랬듯이 민주진영의 주체적 선택에 달려 있다. 정부의 억압을 뚫고 갈 수 있는 조직 대오의 결단, 이질적인 구성세력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디를 향해 갈지에 대한 지혜, 기존의 또 새롭게 제시될 명박산성 딜레마에 대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떤 일이 가능할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모든 것보다 2009년을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약간의 ‘저돌성’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쩔쩔맸던 다양한 문제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그리스 민중의 모습에서, 우리의 지나친 ‘사려 깊음’을 봤다면 비약일까? 어느 때보다도 저항의 ‘국제적인 눈높이’가 아쉽기만 하다. 다른 건 다 국제화를 말하면서 저항은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하지 않는지 갑갑하기 그지없다. (새사연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