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민간단체’ 미군위문협회의 성희롱도 ‘치외법권’

녹색세상 2008. 11. 11. 18:50
 

미국인 지부장 10여명 성희롱…문제 삼자 직원 해고

억지로 포옹, 탈의실까지… 정부…‘소파’ 개입 불가


미군위문협회(USO)의 미국인 한국지부장이 한국인 여직원 10여명을 성희롱한 혐의가 불거지자, 피해 사실을 호소한 일부 여직원을 해고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미군위문협회(USO)와 국가인권위원회 쪽 말을 종합하면, 2003년 미군위문협회 한국지부장으로 부임한 미국인 스탠 페리(55)는 지난해 8~10월께 협회에 근무하는 한국인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희롱 피해자들이 인권위에 낸 진정 내용을 보면, 그는 지난해 10월께 한 여직원을 다른 직원들이 보는 자리에서 강제로 껴안았고, 여자 탈의실로 피하는 여직원을 따라 들어가기도 했다. 이 피해 여성은 진술서에서 당시 상황을 “당하는 줄 알았다. 그 순간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미군위문협회 쪽은 “당시 한국 지부장의 성희롱에 대해 (협회 쪽에) 문제를 제기한 한국인 여직원은 9명 정도였다”며, 성희롱 혐의를 시인했다.

 

 

성희롱 피해 사실을 문제 삼은 일부 여성들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고되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주한미군 관계자는 “페리 지부장이 성희롱을 문제 삼은 한 여직원에 대해 다른 직원들한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확인서를 받아 해고시킨 경우도 있었다”며 “이 협회의 고용 규정에 지사장이 직원을 임의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악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회나 미군 당국 차원의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페리 지부장은 지난해 말 사표를 냈다. 피해 여성들은 여러 방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지난해 말 인권위에 낸 진정은 페리 지부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해 조사가 중단됐다. 인권위는 당시 진정을 낸 여직원들의 진술을 받은 뒤 협회 쪽에 공문을 보내 조사 협조를 요청했으나, 미8군 인사담당자로부터 ‘소파(한-미 주둔군 지위협정)에 관련된 사안이므로 한국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인권위의 담당 조사관은 “우리 노동부 국제협력팀과 외교통상부 쪽에도 질의를 했는데, ‘국내법이 개입될 수 없다’고 통보해 와 조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현택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위원장은 “미군위문협회 같은 단체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민간 기업으로 보기 때문에, 미8군이 제재를 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성희롱 피해를 당한 한 퇴직 여성이 미8군 노동인사국(EEO)에 직접 진정을 제기하자, 미8군 쪽은 ‘미군과 군무원에게만 관할권이 있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취지의 통보를 해왔다. 인권위에 공식 문서로 ‘소파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고 알려온 것과는 정반대의 설명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 쪽은 “미군위문협회의 경우, 관할권 등에서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당사자가 사표를 내 그 문제는 이미 일단락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고유경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가해자는 미군이 아닌 민간인이며 이미 피해 당사자의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 정부가 소파 규정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며 “외교통상부, 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계기관에서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당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 주지 않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한 미군을 비롯한 미국인 관련 범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직무를 방기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겨레 기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