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이 있는 친구를 28년 만에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출장 온 친구도 온다기에 옛 추억을 떠 올릴 겸 갔습니다. 만나보니 세월의 흔적은 피해갈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학창시절을 떠 올리다 보니 우린 어느 덧 10대로 돌아가 추억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서로 모여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화투치기’에 골몰하던 이야기 등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 온 친구가 술이 과했는지 평소 안 쓰던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등 돌출 행동을 해 어리둥절했습니다.
술이 좀 들어가면 남자들의 ‘정치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안주거리인데 술이 많이 들어간 상태에서 ‘희용이 너 왜 그거 하느냐’며 ‘속셈이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속내를 드러낼 사이가 아닌데 받은 뜻 밖의 질문이라 ‘우리 사회에 진보 정당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내용만 말하고 ‘요 정도만 하자’고 넘어가려는데 굳이 ‘의도가 있을 건데 감춘다’고 하니 참 당황스럽더군요. 둘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질문 받으면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죠.
다른 사회 운동 할 여건도 되지 않고 ‘진보정당은 유럽의 예처럼 시대의 흐름’이라 ‘거드는 심정으로 함께 한다’며 애둘러 말했더니 ‘솔직하지 못하다’며 면박을 주었습니다.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할 것 같아 정리도 할 겸 옮기려는데 ‘노래방 가서 여자 부르자’는 말부터 시작해 ‘2차를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을 하더군요. ‘룸사롱 가자’는 말이 나오기에 ‘그런데 가면 내가 징계 받는다’며 좀 봐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오늘 처음 보는 친구도 있는데 바로 자르면 ‘너무 차갑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아 ‘애걸작전’으로 밀어 붙였더니 ‘친구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우군이 거들어 줘 들안길에 노래도 부르는 ‘7080분위기’의 친구네 가게로 갔습니다.
유흥업소에 가는 것도 불편하지만 한 잔 마신 김에 호기 부려 비싼 술 값 내는 게 너무 아까워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술만 먹는 곳으로 가자고 우기곤 합니다. 당당하게 ‘거기는 성매매업소라 안 된다’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기 힘든 현실이 거북한 게 비단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질녀나 딸 같은 젊은 여성들이 억지웃음을 파는 곳에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몰지각한 남자들의 잘못된 문화가 문제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이 없는 평등세상’을 향한 노력이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이런 술자리에서 조차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현실에 화가 나기도 하고요. 사람이 ‘정치적 동물’임에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애써 피하며 마약 같은 순간의 즐거움이 가져다주는 것이 진짜 즐거움으로 착각하는 사람들과 접촉면을 넓혀야 하니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남들은 술 취해도 괜찮게 넘어 가지만 자네가 취하면 자네 조직이 고주망태가 되어 도매금으로 넘어가니 힘들겠다”며 걱정해 주시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라 위안을 삼습니다. 유흥업소 가는 걸 거절하는 것 조차 신경을 써야 하니 이 놈의 획일적인 사회가 여러 사람 고생 시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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