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목사가 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녹색세상 2008. 11. 3. 11:58

 

언론을 통해 왕년의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이란 사람이 목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신앙생활 한지 30년이 넘었지만 이 소식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조폭의 대명사로 연장질(칼쓰기)로 밤의 세계를 장악한 조양은이가 출소하고 ‘신학교가서 선교를 하겠다’는 말 보다 더 섬뜩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내 믿음이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탓이라 자책해 봅니다. 과거의 사실인 고문기술자로서 수 없는 가짜 간첩을 만든 잘못을 뉘우치고 종교에 귀의해 새 삶을 살겠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라 믿습니다. 조양은이나 김태촌이 보여 주듯 사람이 변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오히려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나는 목사가 된 당신을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군요. 축하는 커녕 이 글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전혀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게 아니라 손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출소 시기와 목사 안수 기간을 계산해 보니 너무 빨라 도대체 어느 교단에서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네요. 당신이 목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도연이 주연으로 출연한 ‘밀양’이 바로  떠올라 이만저만 머리가 복잡하지 않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태어나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수 많은 고문과 조작 간첩 사건을 보며 지낸 나로서는 극중 신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군요.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은 내 마음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당신에게 당한 고문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싶은 마음은 오래도록 갈 것 같으니 속 좁고 용서할 줄 모르는 엉터리 신자라고 해도 좋습니다. 신애가 자식을 잃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을 때 자식을 죽인 놈은 하나님이 용서했다고 평안을 얻었다며 희희낙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미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주인공은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어?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 받았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라며 절규를 했지요.  “모두 거짓말이야”라며 피눈물 흘리는 장면을 봤다면 용서란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용서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몫이지 가해자가 감히 거론하는 것은 오만방자 하기 그지없는 짓임에 분명합니다.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는 것은 나중 일이지 정작 용서를 빌어야할 사람에게는 용서를 빌지 않는 구원은 싸구려요 가짜이지 진짜 신앙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도 팔아먹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구원은 진짜 구원이 아니라는 게 신앙생활을 하고 신학을 고민한 사람이기에 말합니다. 이근안 당신의 마음은 진심일지 모르나 아직은 이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범죄 때문에 그 사람을 영원한 범법자로 낙인 찍어 사회에서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고문이라는 인간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악마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없었을지 모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과거가 과거일 뿐일 수 없는 게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아직도 당신이 저지른 고문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사악하기 그지없는 짓을 강요한 국가보안법도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고문을 한 게 아니라 출장 고문을 갈 정도로 소문난 ‘고문기술자’였으니 말이죠. 어지간히 충성하지 않고는 고문기술을 전수받지 못한다는 것을 굳이 상식이라 말할 필요는 없지요. 그러기에 지금 이근안 당신의 신앙과 삶이 아무리 진실하다고 해도 그 참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없을 것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교회를 돌면서 당신의 신앙을 교인들과 나누고 교정시설에서 제소자들을 만나는 일을 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걸 해서는 안 됩니다. 이근안 당신이 목사로서 교인들 앞에 당당하게 서는 것은 처절하게 반성해야할 당신의 과거를 ‘종교장사’로 둔갑할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죠.

 

그런 당신이 활동이랍시고 돌아다니면서 간증이나 설교를 한다면 언론에 오르내린다는 사실 자체가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다시 고문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이근안 당신이 성서가 말하는 구원에 합당한 삶을 원한다면 사람들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한 예수의 말씀처럼 참회하고 조용히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봅니다. 이 땅에서 고통 받는 수 많은 사람들을 아무도 모르게 섬기는 것이 당신의 진심을 보이는 길이라 다시 한 번 감히 말합니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그런 삶 말입니다. 이렇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천박한 한국 교회가 당신을 ‘예수 믿고 새 사람 된 모범 사례’로 널리 팔아먹으려고 할 게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기 전부터 이미 많은 교회를 돌아다녔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은 교회에서 당신을 초청하려고 안달일 겁니다. 그리고 교회를 많이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사례비’도 두둑이 받아 어려웠던 살림살이도 나아지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정말 당신이 예전의 악질 고문기술자에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려 한다면 그런 요청을 뿌리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돈에 눈이 뒤집어져 교인들 앞에서 목사가 아닌 온갖 추악한 짓을 서슴지 않은 인간들을 워낙 많이 봤기에 이근안이란 사람이 강단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렵기만 합니다. 정말 당신이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 했다면 그런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굳이 사족을 단다면 이근안 당신이 선행을 하고, 설교를 했다는 그런 일로 이름이 더 이상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지난 날 고문 피해자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어 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1980년 5월 군인이라 명령에 따라 광주에 투입되어 시민들을 직접 겨냥해 총을 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를 죽였을지 모른다’며 괴로움에 지금까지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수시로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거나, 사죄하는 마음으로 머리 깎고 속세와 인연을 끊고 입산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사진:브레이크뉴스 정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