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사지로 내몰리는 중소기업
최근 자본시장의 위기가 전 세계 실물경제로 파급되면서 금융계에서는 ‘위험자산 리스트’를 새롭게 작성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대출해 주었거나 투자해 둔 자산을 위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일상적으로 관리하곤 하는데, 요즘은 이 리스트를 하루하루 갱신해야 할 정도로 상환이 급변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전망을 하자면, 은행들이 한 발 더 나아가 도산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 살생부’를 작성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중소기업은 은행의 대출금 조기 강제 상환에 처해질 수도 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 등으로 현재 중소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이지만, 은행들은 중소기업 신규 대출 규모를 계속해서 줄여나가고 있다. 상반기 중소기업 신규대출(대출잔고 증가분)은 월 평균 6조 원 정도였으나, 8월에는 2조 6,000억 원으로 급감했다. 이미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까지 겹쳐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여기에 고용된 87퍼센트 노동자들의 고용 위협으로 현실화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주가와 환율을 보면서 주식시장에서 이른바 ‘R의 공포’라는 말이 회자된 지는 오래되었다. 여기서 ‘R의 공포’란 경기 침체를 뜻하는 ‘Recession’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추락하고 있는 세계경제 상황을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인 침체로 보는 경제학자들은 아무도 없다. 현재의 위기 국면은 1-2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경기 침체라기보다는 1930년대의 '대공황’을 떠올리게 한다. 1929년에 시작되어 10년 넘게 지속되었던 이른바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현재 한국 경제학 교수의 90퍼센트 이상을 영향력 아래 두고 있는 주류경제학의 설명을 들어보면, 대공황의 주범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이다. 정부의 통화량과 금 공급(당시에는 금태환을 기준으로 하는 고정 환율제) 정책 실패에 혐의를 두고 있다. 정부는 경제활동 가운데 유동성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위기가 더 큰 위기로 전파되는 이른바 ‘눈사태 스파이럴(snowball spiral)’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심리적 대공황이 낳은 세계 경제위기
하지만 주류 이론은 현재 초래되고 있는 ‘시장의 불신’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주류 경제학은 균형 상태를 항상 상정하기 때문에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신뢰’라는 것은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지 핏대를 세워 ‘정부를 믿어라’,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소리만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유명한 경제학자 피셔(Fisher)가 밝혔듯이, 대공황의 확산에는 과다한 채무와 디플레이션이 큰 영향을 끼쳤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확대시키고 경제활동의 주체들은 대출받은 채무를 가지고 오히려 투기와 자산 거품을 확산시켰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금융기관과 자본시장 그 자체가 위기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의미심장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대공황의 영어 표현에 들어 있는 ‘Depression’은 ‘우울증’으로도 번역한다. 얼마 전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말했다는 ‘국민들의 집단우울증’을 영어로 표현하면 곧바로 ‘대공황’과 같은 ‘Great Depression’이 아닌가? 국민 다수의 심리적 대공황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훗날 엄청난 사회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병을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방책은 커녕 조사 조차 하지 않고 있어 너무나도 갑갑하다. 알제리 민족해방 전선의 활동가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프란츠 파농’의 말처럼 억압적인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정신과 질환에 걸린 사례가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새사연/이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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