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업체 손실을 왜 국민세금으로 메우나?

녹색세상 2008. 10. 20. 15:13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진단과 전망’

미분양 아파트 정부 매입은 ‘특혜조처’

집값폭등 땐 업체가 이익 고스란히 챙겨


전국 미분양 주택 가구 수가 9월 말 현재 16만595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집계를 시작한 1993년 이후 최고치다. 실제 미분양 물량은 공식 집계 물량의 두 배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규 분양값 인하나 기존 미분양 물량의 ‘할인 세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분양 물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수요 대비 공급이 초과 상태라는 점에서 분양값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중국에서 집값이 하락하자 할인된 분양 물량이 대거 등장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주택업체들은 기존 계약자의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주택업체들이 미분양 물량을 잔뜩 안고서도 버틸 수 있게 하는 왜곡된 시장구조다.

 

 

 

공급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분양제에서는 완공까지 3년 정도 시간이 있으므로, 건설업체들은 굳이 서둘러 분양 값을 낮출 이유가 없다. 또 대형 주택건설업체들은 하청업체들에 미분양 물량을 공사 대금 대신 떠넘길 수도 있다. 여전한 분양 값 담합구조도 분양 값 인하를 막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미분양 물량 매입 등을 통한 정부 조처도 분양값 인하를 막고 있다. 이는 서민 주거 안정과 주택가격의 안정을 주택정책의 목표로 하는 정부 역할에 정면으로 반하는 조처다. 정부는 ‘8·21 대책’에서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하기로 한 데 이어 미분양 물량 매입 대상을 중대형까지 확대하고, 민간에서 추진하다 큰 성과가 없었던 ‘미분양 펀드’를 정부가 직접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특혜조처다. 건설업체들은 주택시장에서 자기 책임 아래 주택사업을 한다. 수익이 나도 자신들의 몫이며, 손실이 나도 자신들이 감당해야 한다. 주택 가격이 폭등한 2000년 이후 건설업체들은 매년 사상 최대의 매출 및 영업이익을 냈다.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에도 시장논리에 따라 모든 이익은 해당 건설업체들이 가져갔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이 시장상황에 대한 예측을 잘못하고 지나친 고분양가로 과욕을 부린 탓에 급증한 미분양 물량으로 손실을 보게 생겼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시장원리에 따른다면 당연히 이 손실은 건설업체들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미분양 물량을 사주는 것은 민간 건설업체들의 손실을 정부가 부담해주는 것이다. 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다.


더구나 이런 예산에는 무주택자들이 내는 세금까지 포함돼 있다. 이는 경제적 약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경제적 강자의 손실을 덜어주는 것으로 소득 재분배를 악화시킨다. 집값 폭등으로 생긴 무주택자의 상대적 소득 감소와 박탈감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 정부가 집값 하락으로 생기는 건설업체와 부동산 부자들의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돈이 없어 집을 사지 않는 사람만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손해를 보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미분양 물량 매입 조처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책과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정부는 ‘9·19 대책’에서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시세보다 15%가량 싼 보금자리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한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그린벨트를 풀어 조성한 은평뉴타운의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 가량이나 됐고, 이로 인한 고분양가로 오히려 인접 지역의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정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집값을 낮출 의지가 있다면 시장에 맡겨 자연스럽게 집값이 떨어지게 하면 된다. 그렇게는 하지 않고 그린벨트를 갑자기 푼다니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 예산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에 건설물량을 만들어 주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에도 부동산 거품 붕괴 압력은 막을 수 없다. 급증한 미분양 물량으로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도 없다. 오래지 않아 미분양 물량의 공식 할인이 시작될 것이다. 건설업체들이 기존 계약자의 반발이 무섭다는 핑계로 회사가 도산하는 길을 택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한겨레, 선대인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