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을 도입해 ‘유럽의 금융허브’라는 찬사를 듣던 아이슬란드가 국가부도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3대 은행 전면 국유화라는 극약처방까지 썼지만 위기 탈출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 산업에 ‘모두 걸기’를 해 시장의 빗장을 풀고 외국 돈을 끌어 모았다가 된서리를 맞은 아이슬란드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9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이슬란드 등 자금난에 빠진 신흥시장 국가들에 무제한 긴급 융자를 실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아이슬란드는 러시아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태이지만 러시아가 유보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결국 IMF에 손을 벌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아이슬란드는 지난달 말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예금 지급 불능 상태를 맞았다. 주식시장은 붕괴되고 국가신용등급도 떨어졌다. 통화인 크로나 가치는 급락했다. 식량 등 생필품 대부분을 수입하는 이 나라에서 환율 폭등은 서민들의 삶에 치명타를 안겼다. 정부는 기업이 식량·에너지 구매 외의 용도로 외화를 쓰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지만 암시장은 이미 성행 중이다. 인구가 30만4000명에 불과하고 천연자원도 거의 없는 아이슬란드는 10년 전만 해도 수출의 40%가 어업에서 나올 만큼 개발이 덜 된 나라였으나 2000년대 금융 강국으로 거듭났다.
정부와 금융 산업의 성장 전략은 매우 단순했다. 글로벌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맞춰 ‘외국 돈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규제를 없애고 금리를 올리자 영국ㆍ벨기에ㆍ룩셈부르크 등에서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그 돈으로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유럽의 부동산과 기업을 사들였다. 은행은 자신이 구입할 예정인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아 그 자산을 매입하는‘레버리지 바이아웃(LBO)’에 돈을 쏟아 부었다.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한 탓에 러시아의 ‘검은 돈’도 상당 부분 아이슬란드로 흘러가 투기자금으로 변질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금융시장 자유화’의 명분을 내세워 은행의 투기를 용인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주요 경제자유지수는 세계 최상위권이었다. 기업자유지수는 94.5점(이하 100점 만점), 무역자유지수는 85점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신자유주의 경제시대의 모범’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금융 산업 외에 제조업 등 다른 분야의 경쟁력 향상은 외면했다. 결국 금융위기가 터지자 높은 외국 자본 의존도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아이슬란드 경제를 휩쓸고 말았다. 기업과 국민들은 환율이 급등하고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야 허상을 깨달았다.
경제학자 가우티 크리스트만손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온 국민이 거대한 카지노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며 “무비판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인 아이슬란드인들은 새로운 공산당선언이라도 내놓아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와 지주회사 규제의 완화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가 새겨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달러 모으기’ 쇼나 해대는 대한민국이 교훈으로 삼지 않으면 또 한 번 1997년의 외환위기와 같은 엄청난 태풍이 몰아칠지 모른다. 다치지 않으려면 미리 대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다치는 게 어쩔 수 없다면 덜 다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고 정부의 의무다. 다시 ‘국가부도’와 같은 악몽을 국민들에게 떠 올리게 한다면 ‘부도의 주범’으로 이명박 정부를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경향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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