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환율폭등과 외환위기의 악몽

녹색세상 2008. 10. 10. 12:38
 

환율 1천 350원 찍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인근의 샌버나디노 일대를 지칭하는 ‘인랜드 엠파이어’에서는 ‘한 집 건너 하나씩’ 차압 매물이 쏟아져나온다는 비디오도 봤습니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아랫집도 숏세일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한국의 고급 아파트 값도 반반씩 뚝뚝 잘라져나간다고 들었습니다. 가히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말이 맞는 듯 합니다. 시애틀 역시 ‘미국에서 가장 집 팔기 힘든 도시’라는 평가를 경제전문지 포브스로부터 받았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이 도시가 지난해까지 '비즈니스 하기 가장 좋은 도시'라고 같은 잡지에 의해 소개됐다고 합니다. 그 일년은 정말 엄청난 변화의 일년이었을 것입니다.


1999년. 그들 대자본과 그 뒤에서 이를 받쳐주고 있던 이른바 선진국들의 경제 각료들은 바로 이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를 만들어 세계를 하나의 경제틀로 통합시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분명하게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군요. 미국의 경제위기, 그것도 미국 내부문제에 뿌리를 둔 것이 갑자기 세계로 퍼지는 듯하더니, 금새 세계는 이렇게 엉망이 되는군요. 그들이 말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위력을 이런 식으로 실감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만, 아무튼 이 금융경제를 넘어선 실물경제의 붕괴가 보여주고 있는 사태들은 지금의 사태를 충분히 ‘자본주의의 정체적 위기’라고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성 싶습니다.

 

▲ 9일 오전 원-달러 환율은 한때 전날보다 100원 가까이 오른 1485원까지 치솟았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사진:오마이뉴스)


제 1차 대공황, 즉 20세기 초에도 증권가격 폭락으로 시작돼 실물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렸던 대공황이 중앙은행의 부재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제국주의의 파쇼화, 혹은 독점자본의  성장을 촉발했던 계기가 됐다면, 이번 공황은 지금까지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치달아왔던 세계 경제를 로컬라이제이션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긴 하지만, 기왕에 만들어진 틀이 쉽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번 세계 공황의 여파는 상당히 오래 갈 것이고, 그 상처도 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는 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꽤 고상하게 불리는 자본주의의 거대괴물화가 실제로 경제활동의 일선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얼마나 큰 궁지로 빠뜨려왔는지, 그리고 그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만들어졌던 틀들이 얼마나 많은 약소국들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어왔는지 다시 한 번 성찰했으면 합니다.


고전자본주의를 비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자본가들은 임노동자들을 생산 활동에 투여해 잉여가치를 만들고, 이를 판매해 이윤을 남깁니다. 이 과정에서 생산 활동의 실제적 주체였던 노동자들에게 보다 고루 분배되어야 했을 몫들이 자본가들의 차지가 되고, 자본가는 계속해서 소유 자본을 증식시킨 후 그 규모를 확대시키려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술의 발달과 초과 생산된 산물의 판매처를 찾아 산업 자본주의화 된 강대국들은 원료의 공급처와 시장으로서의 식민지를 확대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전쟁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전쟁은 금융자본주의간의 전쟁으로 진화했습니다. 과거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 돈 벌어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자기네 것으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자본주의는 “돈 벌려면 주식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돈 놓고 돈 먹기’로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금융투기로 버는 돈이 실물경제보다 더 큰 세상에서 노동으로 돈 버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로 치부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이지 머니’를 쫓아다니게 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당연한 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주식들은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실제 가치보다 엄청나게 큰 것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허공에 뜬 돈에는 이른바 ‘크레딧카드’라는 것이 한 몫 했습니다. 자기 봉급으로는 구입할 수 없는 것들도 일반인들이 감히 소비할 수 있게 해 주는 요술방망이 ‘카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시민들의 소비를 과거에 비해 천문학적으로 늘려 놓았고, 사람들은 이 금융의 마술에 휩싸여 마구 써대고 긁어댔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정점에 달할 무렵 그 환상은 이런 식으로 붕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몇 채의 집을 사기 위해 자기 집을 담보 잡혀 받은 은행융자들이 갑작스런 집값 폭락으로 인해 은행들이 융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일어난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해, 미국의 달러 과잉발행으로 인한 달러화 가치의 폭락, 이라크전쟁의 장기화, 국제유가의 급등 등 온갖 악재들이 터지기 시작하고, 실물경제가 갑자기 망가져 버렸습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달러가 허공으로 떠 버렸고, 집갑은 버블이 폭발하면서 폭락세로 이어지고, 결국 뉴욕의 주가가 1만선 아래로 추락하고... 예. 분명합니다. 지금의 사태는 꽤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면, 지금의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불행히도 기존의 방법들로는 이제 그 구원이 멀어져 버린 듯 합니다.


미국 정부가 아무리 구제자금을 갖다 부어도, 신용도를 잃은 '금융'시장은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현대자본주의가 겪어보지 못한 가장 큰 위기가 도래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금융자본주의에서 투자자들이 가진 공포는 확대 재생산되어, 결국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주위에서 '포클로저' 니 '숏세일'이니 하는 사인판들이 문득문득 서 있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내 예금이 예치되어 있는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포에 질리고, 지갑을 꼭꼭 닫기 시작하고, 피부에는 어느새 한기로 인한 소름이 쫙 끼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엄혹한 시기를 살아남아야 하고, 이 사회의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개인의 자각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과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한참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습니다. 예,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가 왔군요.


현재의 세계화 지향 경제는 이제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든 로컬화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런 대책 없는 세계화는 원래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준비됐을 터입니다. 그러나, 금융자본의 이동과 더불어 일반 재화들 역시 비교적 큰 규제 없이 이동되면서, 이는 지금의 세계적인 중국발 먹을거리 사태까지도 불러왔을 것입니다. 서로간의 식량 주권을 존중해주고, 진짜 ‘세계적 차원’에서 기아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큰 틀에서 사고해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낍니다.


과장 조금 하자면, 브라질에서는 인스턴트커피를 만들기 위해 커피만 미친 듯 심고, 에콰도르에서는 바나나와 파인애플만을 길러 외국으로 수출하고, 우리가 입는 옷은 무조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만 입고 있는 세상을 바꿔야 한단 말입니다. 생산이 오로지 수출을 위해서 존재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또 하나는 ‘노동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제 몫을 제대로 받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겠지만, 만일 노동에 대한 가치관과 직업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공정한 임금이 주어진다면, 노동자들은 언젠가 다시 '구매력'이 되어 줄 것이고, 그 힘이 다시 공장과 농장들을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 얼핏 잡아 CEO들 봉급만이라도 현재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면, 같은 돈으로 수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기업들, 아마 꽤 될 겁니다. 그래서, 금융자본이 창출할 수 있는 잉여가 노동자가 만드는 잉여보다 더 큰 지금의 모순을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살아가면서 가치관을 바꿔야 할 듯 합니다. 미국 말에 쓸 만한 게 하나 있습니다. ‘Easy come, easy go.’ 예.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갑니다. 우리가 시장이 미쳐 돌아가면서 이른바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불로소득을 쫓아다녔다는 사실을 부인하실 분들 별로 없으실 듯 합니다.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고, 그 소득을 적절히 투자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집을 담보 잡아 또 다른 집을 사서 투자할 생각을 한다든지, 세계의 외환 시장의 변동을 따라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한몫 잡겠다는 것은 결국 나의 풍족함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떠넘기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외환위기 때의 한국 모습을 되새겨보십시오. 어쩌면 그게 몇달 후, 아니면 며칠 후의 한국 모습이 될 지도 모릅니다. 환투기 세력이 한국에서 벌인 짓들. 그들은 축배를 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금준미주 천인혈 옥반가효 만성고’가 아니었습니까. 아무튼,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들어낸 모순' 입니다. 그 때문에, 그 극복도 '사람들의 힘'으로만 가능할 것일 터입니다. 귀가 에일 정도의 찬바람이 불어오는 시절, 삭풍에도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그만큼 따뜻해질 것입니다. (시애틀에서,아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