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월가의 몰락’ 허물어지는 ‘엉클샘의 꿈’

녹색세상 2008. 10. 7. 11:58
 

고가주택·요트 등 ‘부의 상징’ 매물 쏟아져

후쿠야마 “미국식 자본주의 시대 끝났다”


월가발 금융위기가 미국 뉴요커들의 화려한 전성시대에 종말을 가져오고, 서민들의 삶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5일 “월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고가 주택과 요트, 화려한 파티 등으로 세계의 부를 상징하던 월가가 과거 생활 방식에 ‘굿바이’를 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월가는 청바지에 노트북 하나 달랑 든 젊은이가 하룻밤 사이에 닷컴 백만장자가 되고, 아이디어 하나로 쉽게 돈을 버는 ‘꿈의 거리’였다. 월가는 부의 개념도 바꾸었다. 1982년 재산이 1억5900만달러면 포브스가 선정하는 400대 부자에 들었지만, 올해는 적어도 13억 달러는 있어야 한다. 이런 부의 상징이 하나씩 허물어지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등산용품 전문 쇼핑몰인 아르이아이(REI)에서 3일 고객들이 등산화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미 의회가 진통 끝에 ‘월스트리트’를 구하기 위해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자동차·소비재 판매 등 실물경제 지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진: AP연합)


지난달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의 전 최고운영책임자(COO) 조지프 그레고리는 뉴욕 브리지햄프턴에 있는 3250만 달러짜리 저택을 팔려고 내놓았다. 대지 1만㎡에 바다를 향한 방이 8개 딸린 호화주택이다. 부자의 아이콘인 요트 매물도 쏟아져 나왔다. 요트 중개업자 조나선 베케트는 과거 8년 동안 요트를 팔려고 내놓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나, 최근 1천만~1억5천만달러짜리 요트 여러 대가 시장에 나왔다고 전했다. 맨해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바버라 웰스는 “월세 1만1500달러 하던 집을 8500달러에 내놓았는데, 세입자는 8000달러를 제시했다”며 “결국 집주인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미국의 꿈의 궁전’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스티브 프레이저는 “자유 시장 심취 시대의 종언, 월스트리트가 쌓아온 권력과 명성의 종언, 화려한 부의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며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의 쇠락이 곧바로 서민 생활로 전이될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에이피(AP)’ 통신은 전국에서 수십 명을 인터뷰한 결과, 금융위기의 불안감이 서민들로 하여금 허리띠를 졸라매게 만들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이날 전했다. 버지니아에서 오토바이와 경주용 특수차량을 판매하는 매트 왓슨은 가족 외식을 끊었으며, ‘짝퉁’ 상품만 산다고 말했다. 시애틀의 가구상 에이미 로빈슨은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다. 신용카드 이자율이 8%에서 17%로 껑충 뛰었다”며 정부의 구제금융이 과연 이런 고통을 풀어줄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했다. 경기한파는 경제권의 변두리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애리조나에서 여자 5명이 멕시코 음식 토르티야를 만들어 파는 토르티야레이디는 일주일에 1만8천~2만개를 공급했으나, 금융위기 이후 주문량이 1만2천개로 떨어졌다.


자동차 판매업자들은 경기 침체에 직접 타격을 받고 있다. 전국자동차판매협회는 올해 폐업하는 업소가 애초 예상됐던 300~400개보다 많은 500~600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보스턴에서 자동차판매업을 하는 레이 치콜로는 “46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재앙의 폭풍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역사의 종말’에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의 최후 단계라고 주장하며 미국식 체제의 승리를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미국이 견지해오던 두가지 이념인 레이거니즘과 자유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있다고 <뉴스위크> 13일치 기고에서 주장했다. 그는 “금융위기는 낮은 세금과 규제완화, 작은 정부를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던 미국식 자본주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며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미국 패권 유지를 위한 거짓말로 변질됐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