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환율은 둘째문제…당장 외화 확보가 급선무”

녹색세상 2008. 10. 7. 11:45
 

정부관계자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

외환전문가 “최악 시나리오로 가나”

 

 

“지금은 손익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있는 것 하나라도 처분해서 유동성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6일 오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했던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기설을 괴담으로 치부했던 정부 당국자의 입에서 이젠 ‘위기’란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경제 전문가들에게선 우리 경제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날 금융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는 폭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무려 45.5원 폭등한 1269원으로 마감됐다. 지난해 말 936.1원이던 환율이 35.6%나 올랐으니 거의 외환위기에 맞먹는 충격이다. 외환시장 딜러들은 환율이 오전 한때 1300원에 육박하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주에 비해 45.5원 오른 1,269원을 기록한 6일 오후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 (사진:한겨레 신문)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수입 원자재를 많이 쓰는 중소기업들은 줄줄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식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은 지난 2일 3236억원에 이어 2523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자금의 대부분은 바로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환전돼 본국으로 회수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은 주가가 하락하면 환율이 오르고, 환율이 오르면 다시 주가가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환율 급등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유럽 확산에 대한 불안감으로 외국인들이 대거 달러 매수에 나선 것이 촉발제가 됐다. 특히 유럽 각국이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구제금융에 나서면서 전역이 금융위기에 휩싸이는 국면이다. 우리 정부도 속수무책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이날 오전 은행장 회의에서 국외자산을 매각해서라도 외화 유동성을 마련하라고 요구했지만 오히려 극도로 민감해진 금융시장에 역작용을 불러왔다.


은행별 외화자산은 150억~300억달러에 이르지만 수출금융과 미수ㆍ미결제 자금, 외화대출을 빼면 남는 것은 10억~20억달러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한 외환딜러는 “강 장관의 발언이 환율 폭등의 기폭제가 됐다”며 “가뜩이나 분위기가 안 좋은데 외화자산 팔아서 유동성 준비하라고 하는 것은 돈(달러) 없다는 신호 아니냐”고 말했다. 외화자금시장 경색 내년 말까지 가나 외환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서 환율은 둘째 문제라고 말한다. 얼마가 됐든 당장 필요한 외화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퍼지면서 적어도 1년 이상 이런 고난의 시기가 이어질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도 “지금 상황이 몇 달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적인 신용경색이 진정되려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 전문가들도 대체로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환율 하락 변수를 찾기 힘들어 언제라도 1300원을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경제가 여러 전망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시나리오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민영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 국면에 있어 내년 상반기까지는 풀리기 어려울 것이며 내년 하반기도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 외화자금 시장의 경색은 국제 금융시장이 풀릴 때까지는 개선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경제 바탕이 튼튼하다’며 큰 소리 치던 강만수의 입에서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니 이제 정부 실무자의 입에서 ‘최악의 상황’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속 보이는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려고 하는지 참으로 갑갑하기 그지없다.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할 때 미리 준비를 하며 대응책을 마련했다면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저런 인간들을 국민의 혈세로 먹여 살리는 현실에 화난 국민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한겨레기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