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고삐 풀린 부동산과 금융, 국민경제 벼랑 끝으로 내몬다.

녹색세상 2008. 10. 1. 09:59
 

자멸한 미 금융시스템, 국민들도 외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미국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기를 수습하고자 급하게 미국 정부가 내놓은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9월 28일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법안 통과를 호소했고,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비롯하여 메케인 공화당 후보와 오바마 민주당 후보까지 거들며 나섰다. 정부 관리들은 입에 담지 못할 ‘대공황 위험’까지 운운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당연히 통과되리라 믿었던 법안은 보기 좋게 부결되었다. 즉시 월가는 대혼란에 빠졌고 주가는 무려 7퍼센트에 달하는 777포인트나 폭락했다. 이 여파는 대서양 건너 유럽으로 확대되어 영국을 필두로 한 금융기관 파산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 하원이 7천억 달러의 구제 금융안을 부결시킨 29일 미국 다우지수가 102년 역사상 최대인 7% 폭락했다. 이날 증시가 폐장한 뒤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중개인이 피곤한 듯 눈을 문지르고 있다. (사진: 연합통신)


이제 세계는 미국이 저지른 엄청난 금융사기극을 막을 방도를 잃고 사분오열하고 있다. 부결의 결정적 원인에는 금융사기극에 분노한 미국 국민들과 선거를 앞두고 지지표를 저울질해야 했던 미국 의원들이 있었다. 미국 전체 1억 2,000만 가구 가운데 모기지 대출을 받은 가구가 5,000만, 문제의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가구는 전체 모기지 대출 가구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750만 가구다. 이 가운데 약 500만 가구가 모기지 대출 연체 내지는 주택 차압을 당하여 생활기반이 붕괴 위기에 내몰려 있다.


고수익을 좇던 미국 금융회사들은 자신들이 고안하여 유통시킨 각종 파생상품과 이의 대규모 거래를 위해 끌어들인 엄청난 차입으로 인해 자신들 스스로 금융체계를 붕괴시켜 버렸다. 이로 인해 월가뿐 아니라 특히 미국 국민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은 그 최대 피해 당사자인 미국 국민이 아니라 문제를 발생시킨 주범인 월가의 금융회사들을 구제하도록 설계되었다. 처음에는 이들 주범에 대한 어떤 ‘징벌 조치’도 없이, 이들 자산에 대한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어 이들을 ‘구제’해 주는 것이었다. 거센 비판 여론이 일자 나중에서야 경영자 스톡옵션 제한, 부실자산 인수기업 지분 인수권 확보 등을 끼워 넣었지만, 이런 조치는 미국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문제를 일으킨 주범들에 대한 어떤 징벌도 없이 그들을 구제해 주면서 막상 최대 피해자인 미국 국민들에 대한 구제 대책은 없다. 이라크 전쟁비용 6,005억 달러를 뛰어넘는 7,000억 달러 세금을 투입하는 법안에 찬성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폭스 비즈니스 닷컴이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64퍼센트가 구제 금융을 찬성한 의원들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고 응답했고, 표를 주겠다고 답한 국민은 10퍼센트에 불과했다. 미국 여론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다. 결국 11월 4일 대선과 의회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인들은 표를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구제금융 법안은 찬성 205표, 반대 228표, 기권 1표로 부결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해를 본 미국 국민들에 대한 대책은 고사하고 다시 국민 세금을 동원하여 문제를 일으켰던 금융회사를 살려주는 것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고, 자칫 미국 전체를 공멸할 수도 있는 금융시스템을 복원시키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정도의 양해를 구하기에 30여년 된 신자유주의는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미국민의 불신을 너무 키운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미국 신자유주의와 이를 선도했던 미국 금융회사들의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 정치인들의 무능함과 친기업적(금융적) 행태가 문제 해결을 가로막았다.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로 번져가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미국 보고도 한국은 부동산과 금융 규제 풀려나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 정치인들은 더 나을 수 있을까? 과거 전통적 동양사상에 따르면 통치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치산치수’라고 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부동산과 금융 관리라 할 만하다. 현대에서 가장 민감한 토지 문제는 부동산이고, 현대 금융은 산업의 혈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부동산과 금융은 특히 국가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고 감독되어야 한다. 완전히 규제가 풀려버린 부동산과 금융이 잘못 만나면 경제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을 통해 생생하게 보고 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현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고집스럽게 부동산 경기 부양정책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으며, 금산분리 완화를 포함한 금융규제 완화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러는 동안 외환시장은 극도의 불안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중소기업들의 키코(KIKO) 파생상품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태산 엘시디를 필두로 한 우량 중소기업들의 줄 파산이 눈앞에 두고 있다. 한계 상황에 내몰린 600만 자영업자들의 생존은 이제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게 되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 살리기를 외면하면서 끝내 부동산과 금융의 잘못된 만남을 이끌고 있는 정부는 어떤 시간대를 살고 있는가. 미국 정치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그 공멸의 길을 한국 정치는 눈으로 보면서도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사연/김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