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첨단 금융기법을 자랑하며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우뚝 섰던 미국 월가가 폭격 당한 도시처럼 허물어지고 있다. 월가란 이름은 오래 전 뉴욕의 맨해턴 남부에 인디언의 공격을 막기 위해 높은 담을 쌓았던 데서 유래하는데, 지금 월가는 담장 밖의 적이 아니라 담장 안의 과욕 때문에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미 연방은행의 과도한 저금리 정책과 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이번 금융위기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금융공학이 발명한 다양한 금융파생상품이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암세포는 어디까지 퍼졌는지를 첨단의료기기를 이용하면 거의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데 비해 금융파생상품의 종류는 너무나 복잡다기하여 금융부실 규모와 범위를 어느 누구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 9월 30일 오전 코스피 지수가 미국 증시의 대폭락 여파로 급락 출발,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이 녹색으로 변해 있다. (사진:한겨레신문)
특히 지난 8년의 공화당 정권은 항상 ‘시장’을 금과옥조로 삼아 금융시장의 부실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해 왔을 뿐 아니라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소수의 부자들에게는 돈다발을 안겨주었지만 엄청난 재정적자를 키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가 키웠던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를 크게 줄였던 게 클린턴이었는데, 아들 부시가 8년 만에 다시 천문학적인 규모로 쌍둥이 적자를 키움으로써 공화당 정권이 경제에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들이 내세우는 시장주의 경제철학이 결국 소수의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고, 미국의 중산층, 서민, 나아가서는 세계 경제에 재앙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다.
사태가 명명백백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 유권자가 절반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번 금융위기가 대선 직전에 터짐으로써 미국 국민에게 교육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 집권기에는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등 경제성적표가 나빠진다는 것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한국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경제가 추종해온 것이 미국식 월가 자본주의 모델이고, 미국에서 경제학을 훈련받은 사람들이 학계, 정부, 재계, 언론계에 포진하여 날마다 ‘시장’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모든 전봇대를 뽑을 듯이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고, 작은 정부, 감세를 내세워 멀쩡한 종합부동산세조차 없애려고 하고 있다. 부시의 경제철학과 쏙 빼닮은 이명박의 경제철학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한 것이 지나친 규제완화와 부동산 거품이었음을 모른다면 자리 내 놓고 집으로 조용히 가야한다.
맹목적 시장주의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지를 미국 금융위기가 잘 보여준다. 내년 2월이면 자본시장통합법이 발효하고, 이명박 정부가 호시탐탐 금산분리 원칙을 허물려고 하는 상황에 터진 미국의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주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이명박 정부는 시장만능주의 궤도를 버리고 철저한 금융규제, 감독 강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앞에 가던 수레가 거꾸러지는 걸 보고도 그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어리석은 짓은 삼척동자도 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하고도 남을 것 같아 걱정이다. 1997년 외환위기의 교훈을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 풀기에만 정신이 없어 민중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필자인 이정우 박사는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소득분배론’의 1인자로 부르지만 당사자는 ‘과찬’이라고 할 정도로 겸손한 양반이다. (한겨레/이정우 박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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