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미국과 EU 등 G7을 포함한 주요 10개국 중앙은행들이 긴급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신용공황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효과가 있든 없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금리 인하 공조는 옳은 조치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금리인하는 완전한 방향착오다. 지금의 신용공황은 예금자들과 투자자들이 은행과 증권사와 펀드를 믿지 못하고 있어 발생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금리를 인하하면 더더욱 돈을 빼가라고 부채질 하는 것이다. 은행 등에 돈이 많이 있으나 대출위험이 높아 대출을 꺼리기 때문에 신용경색이 생긴 경우에는 금리인하가 효과가 있다.
그러나 예금자들과 투자자들이 은행과 증권사, 펀드를 믿지 못해 돈을 빼가는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완전히 헛발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그 헛발질의 결과는 다우지수의 추가 폭락으로 나타났다. FRB 버낸키 의장이나 폴슨 재무장관이 금리인하가 상황에 맞지 않는 헛발질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은 이것 외에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다. 물론 FRB는 신용공황의 여파가 미국의 실물경제에도 공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금리인하를 통해 이를 차단하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굳이 국제 공조까지 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서는 자금인출 사태라는 발등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실물경제를 우려하여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말은 우선순위 면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금인출이 발생하는 신용공황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는 것은 가격이론에 반하는 행위다. 지금의 신용공황을 극복하려면 부실 금융기관들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하고 전액 예금 보호를 실시해야 한다. 우리 연구소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금 미국이나 유럽이 그렇게 가고 있다. 일단 은행에서 돈이 안 빠져나가도록 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예금인출이 멈출 때까지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기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은행들이 신용대출에 나설 여유가 생기게 된다. 예금인출로 자신들마저도 급한 마당에 은행들이 남에게 돈을 빌려줄 여유가 없다.
금리를 내린다고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주가 하락은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와 경기침체를 반영한 장기적 조정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결과물인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면 문제의 근원지인 금융권의 혼란이 오히려 심화될 뿐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지금 실물경제가 급속히 침체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우므로 동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2007년 8월부터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 불과 9개월 만에 5.25%에서 2%까지 3.25%나 금리를 내렸다. 이렇게 단기간에 3% 이상 금리를 내린 경우는 사실상 없었다.
단기간의 급격한 금리인하는 결과적으로 정책적 수단을 소진한 셈이 되었으며,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예금자들의 예금 인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버블 붕괴로 인한 부실을 주식시장이 반영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리하게 주가하락을 막으려 했으니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 되고 만 것이다. 9일 한국은행도 미국과 유럽 등의 긴급 금리인하 공조에 동조하여 0.25% 콜금리를 인하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추가로 금리를 인하하겠다고 했다. 한 마디로 어이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화급한 문제는 원달러 환율 폭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외환위기 가능성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를 봉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마당에 금리를 인하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그나마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들도 모조리 다 빠져 나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달러 환율 폭등을 한국은행이 오히려 나서서 더욱 부채질한 꼴이다. 2008년 6월말 현재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국내 지점들의 단기외화차입 규모만 1,320억 달러를 넘는다. 장기차입금까지 합하면 2,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정부가 2,4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로 시장개입을 하여 과연 얼마나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으며 얼마 동안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주요 10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금리를 인하하고 있으므로 원화 금리는 그대로 두어도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셈이다. 금리라도 다른 나라보다 더 준다고 해야 빠져나가려는 돈들이 그나마 멈출 수 있지 않겠는가?
덴마크는 10월 7일 정책금리를 현행 4.6%에서 0.4% 인상하여 5.0%로 상향 조정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금융위기로 덴마크 외환시장에서 덴마크 크로네화가 폭락세를 보이고 있어 시장개입을 지속해왔으나 계속되는 외화유출을 막지 못해 긴급히 금리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덴마크 역시 한국과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 덴마크도 부동산 버블이 극심하였는데 올 들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내수경기도 침체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올 8월부터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덴마크 국내은행 부실에 대한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그로 인해 외국 투기자금들이 덴마크로부터 급속히 이탈하기 시작했고 크로네화 환율도 도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8월 초의 달러당 4.6크로네에서 최근 5.5크로네 수준까지 폭등을 계속 하고 있다. 이에 덴마크 중앙은행은 시장개입으로도 크로네화의 환율폭등이 억제되지 않음에 따라 금리인상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이런 사태를 우려하여 7월말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먼저 전세계적으로 급속한 부동산 버블 붕괴가 진행되는데 한국도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빨리 부동산 버블을 시장을 통해 조정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고유가로 물가 폭등세가 지속되고 있는 마당에, 환율마저 폭등하면 물가가 더욱 폭등할 수밖에 없다. 물가를 잡지 않으면 중간 이하 소득계층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금리를 인상하면 물가폭등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다. 셋째로는 원달러 환율 폭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달러자금 이탈을 막아야 한다. 달러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금리를 높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현재로서는 부동산 버블 붕괴도 경기침체도 당장에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세 가지 의미에서 금리를 0.25%씩 단계적으로 인상하여 5.5~6.0%까지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7월에 금리 인상을 주장한 뒤 한국은행이 0.25%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기에 안달이 난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 이후 금리를 동결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처럼 환율이 폭등하고 외환위기가 임박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에 앞서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빨리 하향 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부동산가격을 올리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다. 그 결과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경제 전체의 타격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부동산 투기에 휩쓸려 정치적 선택을 한 국민들 역시 엄중한 대가와 시행착오의 학습효과를 피할 도리가 없게 돼버렸다. (김광수 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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