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경찰의 수사권 독립, 말도 꺼내지 마라.

녹색세상 2008. 9. 25. 10:56
 

수사권 독립을 외친 용기로 국민부터 섬겨라 

 

현재 대전 중부 경찰서장으로 성매매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는 황운하 총경은 경찰대 1기로 경찰 수사권 독립의 상징적 인물이다. 황 총경이 경찰 수사권 독립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1999년 6월 서울 성동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할 때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이 되기도 전이다. 아마 이 날은 한국 검찰에게는 치욕의 날 일 것이다. 9.11 테러로 미국이 처음으로 자국 내부가 공격받았듯이 한국 검찰은 처음으로 경찰의 반란을 겪었다.

 

▲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한 여성이 6월 26일 새벽 서울 신문로에서 경찰의 물대포 살수를 막아서며, 통행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이날 ‘경향신문’은 “경찰의 반란을 주도한 성동경찰서 황운하 형사과장은 23일 ‘이번 일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당당히 밝혔다. 그는 ‘경찰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경찰관들을 검찰에 파견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며 그 동안  검찰은 수사지휘를 명분삼아 경찰인원을 마음대로 데려다 썼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최근 검찰에 파견된 직원들을 전격 복귀시켜 파문을 일으킨 서울 성동경찰서 황운하 형사과장은 24일 “이는 우리 부서 직원들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대 졸업생들 가운데서도 수사권독립문제에 적극적인 편이었던 황 과장은 동문들과의 사전논의 여부에 대해서도 “사전의견 조율이 이루어진 조직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경찰대 출신들의 공감대 위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파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경찰대 출신 경찰간부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로부터도 ‘잘 했다’는 격려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공무원 임용령’ 등은 국가기관이 경찰관의 장기 파견을 요청할 경우 경찰청장의 인가를 얻어 1년간 파견할 수 있으며 1회에 한해 연장을 허용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의 경우 검찰 파견경찰관 190여명 가운데 경찰청장의 승인을 얻은 경우는 10여명에 불과했다.


검찰은 관련 규정을 무시하고 베테랑 경찰 수사관을 징발했다. 편제상 정원은 경찰로 잡히고 실제 일은 검찰에서 하니 경찰로서는 이중으로 손해였다. 이 정도로 경찰은 검찰에 종속되어 있었다. 1999년 6월 경찰은 파견 인력 복귀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선두에 선 게 황 총경(당시는 수사 과장)이었다. 그는 서울지검과 서울동부지청에 파견된 성동서 형사 5명에게 6월23일자로 복귀 명령을 내리면서 “만약 복귀하지 않으면 경무과로 발령 내 외근 수당을 못 받게 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경찰 인력을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검찰)가 쥐(경찰)에게 물린 격이었지만 불법은 아니니 검찰도 어쩔 수 없었다. 당시 검사들의 황 총경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했다. 평소에 점잖았던 한 고위급 검사는 폭탄주 몇 잔이 돌더니 입에 담기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황 총경을 욕했다. 그는 “그 ○○○ 가만 안두겠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나? 두고 보라!”고 큰소리 쳤다. 황 총경은 이런 면에서 대단하다.

 

▲경찰대 1기 졸업생으로 수사권 독립의 중심에 있는 황운하 대전중부경찰서장.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가 경찰의 기본임무임을 다시 공부 좀 해야 할 것 같다. (사진:오마이뉴스)


경찰대 1기 출신 서장은 ‘권력이 중요한가 국민이 중요한가?’

 

이런 황 총경이 얼마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촛불집회와 관련 어청수 청장의 사퇴 주장은 “정략적인 방법으로 경찰청장 사퇴론이 거론되는 것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약화시킨다”며 반대했다. “개인적으로 어 청장 사퇴론이 제기된 근거들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 “경찰이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국민의 편에 서도록 하려면 오히려 국민이 나서서 그런 것을 막아야 한다.”


황 총경은 정운천 전 농림식품부 장관의 대전방문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충돌을 이유로 30여명을 소환 조사했다. 처벌 의지도 강하다. 황 총경의 어청수 사퇴 반대 논리는 경찰 입장에서는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보면 실망이다. 아니 실망이라기 보 다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라고나 할까… 어청수 청장의 해임을 반대했는데 정작 본인은 이택순 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지난해 이택순 청장 사퇴에 대해서는 임기제 경찰청장의 중도사퇴라는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조직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게 그의 설명이다. 이택순 청장은 중도 하차해도 경찰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가 경찰 내부에 있었지만 어청수 청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황 총경이 내세운 근거는 ‘경찰 조직 내부의 공감대’다. 정말 독선적인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 조직 내부의 공감대가 곧 국민적 공감대와 일치한다는 보장이 있는지 그 근거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권 독립의 근거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최소한 황 총경 정도라면 어청수 보위의 근거로 ‘국민적 공감대’를 들어야지 겨우 ‘경찰 내부의 공감대’를 든 것은 많은 국민들 눈에는 그 역시 조직 이기주의자에 불과했다는 증거로 보여 영 실망이다. 공안정국 와중에 검찰과 경찰의 충성 경쟁이 볼만하다. 둘이 앙숙인줄 알았는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공안정국에 있어 ‘검경의 결합 효과’가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거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찬성했던 것이 단견이었다는 판단에까지 이르렀다. 과거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찬성하면서도 가장 께름칙했던 것은 15만 명의 무장인력이 수사권이라는 발톱을 갖게 됐을 때 과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이런 기대는 ‘속도위반’이었음을 깨달았다.


한국 사회의 군대ㆍ경찰ㆍ검찰 등은 10년의 민주정권을 겪었지만 그들 조직의 속성과 구성원들의 인식은 독재정권 때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국방부의 교과서 개정 요구와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한 미화를 보면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남들은 군사독재 정권에 대항해 싸울 때 출세하려고 경찰대학에 들어가고 사관학교에 간 인물들의 머리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는 뻔하다. 이명박 정권의 공안몰이에 검경이 일체가 되어 누가 더 충실한 사냥개가 될 것인지 치열한 경쟁 중이다.


국민 입장에서 봤을 대 독재 정권의 사냥개는 한 마리로 족하다. 검찰 견(犬) 에 경찰 견(犬)까지 키울 필요가 없다. 경찰 수뇌부야 대통령 눈치보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경찰 조직 전체가 합심해서 촛불시위 때려잡기에 앞장서고, 어청수 사퇴론까지 불거지게 된 상황에 대해 반성은 커녕 그런 요구를 비난하고 있다. 황 총경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하다. 사이버 수사대는 유모차 부대를 소환 조사하는가 하면 어청수는 아동학대죄 적용까지 시사했다.


그리고 경찰 조직은 위아래 일치단결해 어 청장을 보위한다. 황 총경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국민의 편에 서도록 하려면 오히려 국민이 나서서 그런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주객전도다. 경찰이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떳떳해야 국민이 응원하는 법인데 똑똑하다는 경찰 총경은 오히려 그 반대를 요구한다. 국민이 막아줄 만한 가치가 있어야 경찰 조직을 보위해줄 것 아닐까? 현재 경찰의 행태를 볼 때 막아줘야 할 이유가 뭘까?


아니 평범한 국민이 뭔 힘이 있다고 경찰 조직을 보호해 줄 수 있나? 혹시 촛불시위 찬성하는 국민과 반대하는 국민으로 나누고 찬성파는 경찰 수사권 독립과 별 상관없다는 태도 아닌가? 여론조사를 해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찬성하는 국민들은 대개 진보적이거나 최소한 야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많다. 다른 말로 하면 이번 촛불 시위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경찰 수사권 독립에 찬성할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중요시 하니까....


이들에게 다시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해 물어보면 반대가 월등하게 많을 것 같다. 물론 보수층은 원래부터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해 부정적이었을 테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집권당에는 경찰 출신이 친박 무소속 이었다가 복당한 이인기 의원 한 명뿐이지만 검사 출신들은 홍준표 원내총무부터 시작해 ‘물 반 고기 반’이다. 촛불시위를 앞뒤로 한 경찰 조직의 태도는 그들 스스로 수사권 독립의 우군 세력을 발로 차 버린 결과가 됐다.


서글픈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걸린 악성 종양이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 진전으로 혜택을 보게 된 자들이 그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는 일이 너무 많다.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은 한편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1999년 6월 황 총경이 일개 일선서 형사과장의 신분으로 막강한 검찰과 맞짱을 뜰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 용기와 신념이 기본이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당시 만약 DJ정권이 아니라 이회창 정권이었다면 '경찰의 반란‘은 꿈도 못 꿨을 것이고 경찰 반란 수괴 황 총경은 아마 검찰 수사실에 끌려가 전기 고문은 아니더라도 몇 대 얻어터졌을 것이다. 경찰 수사권 독립 공론화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진전, 무엇보다 민주세력의 집권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경찰 조직 내부는 위아래 합심하여 민주 정권의 지지자들을 때려잡는데 열심이다. 유모차 부대 수사과정에서 보인 우리 ‘경관 나으리’들의 충성 모습은 1980년대와 별 달라진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후퇴하고 말았다.


이 수준으로 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오죽했으면 여당의 차명진 대변인이 나서서 ‘경찰은 과잉충성하지 말라’는 논평까지 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황 총경은 지난 4월 사이버경찰청 경찰가족사랑방 자유발언대에 올린 ‘경찰쇠락시대?’라는 글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경찰 출신 인사들이 공천에서 탈락한 것을 한탄했다. 당시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그는 “18대 국회에서 경찰 출신 국회의원은 단 한명도 없을지 모르겠다”며 “검사 출신은 최소 20~30여명이”국회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더욱 허망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조직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고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언제 경찰의 전성시대가 있기라도 했겠냐마는 바야흐로 경찰 쇠락시대가 도래한 듯하다”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경찰 출신 국회의원이 별로 없음을 한탄하면서 이전 경찰 수사권 독립에 찬성했던 시민들이 등을 돌려버린 것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공안정국에서 검찰을 압도하는 탁월한 능력에다, 어청수 청장에 대한 대통령의 무한한 신뢰와 신임을 볼 때 이미 '경찰의 전성시대'는 도래했으니 굳이 수사권 독립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권력이나 국가기구도 ‘국민의 생명’과 권리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ㆍ노태우나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도 독재를 했을지언정 국민들에게 미친쇠고기 먹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시위대를 진압하라’는 명령에 “무고한 시민들을 진압할 수 없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은 전남도경국장 같은 사람이 21세기 대한민국 경찰에 없다는 것은 정말 비극 중의 최고의 비극이다. 1690년 일본 국회의사당에 시위대가 난입하자 수상이 진압 명령을 내렸음에도 ‘수상 당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인데 진압할 수 없다’며 거부한 경시청장과 같은 인물이 없다는 것은 언제든지 권력을 따라 아부와 사냥개 노릇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다.


여성의 얼굴을 사정없이 짓밟고, 그것도 다시 나오는 사람을 또 짓밟고 어린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향해 소화기를 뿌려대는 경찰의 행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다는 이명박 권력을 향한 충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경찰은 나가도 너무 멀리 나갔다. 촛불을 한 번이라도 든 국민들에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라. 어떤 답이 나올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오마이블로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