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당신만은 내가 꼭 살릴 거야’....

녹색세상 2008. 9. 16. 13:38

 

 

 

 

‘너는 내 운명’이란 전도연 주연의 영화가 생각난다. 통장 5개, 젖소 한 마리로 목장 경영을 꿈꾸는 노총각 석중. 동정은 당연히 첫사랑에게 바치겠다는 순진한 시골총각 석중 앞에 새벽이슬처럼 영롱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동네 순정다방 일하는 은하(전도연)였다. 한눈에 은하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석중은 그녀에게 촌스러운 구애를 시작하고, 겉으로 새침한 은하는 그런 그가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의 다방 출입이 불안한 석중의 어머니는 석중을 억지로 선보게 하고, 그 장면을 목격한 은하는 홧김에 여관으로 차 배달을 자청한다. 여관에서 손님에게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은하 옆을 밤낮으로 지키던 석중은 퉁퉁 부어 만신창이가 된 은하를 보며 ‘은하씨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며 수줍은 사랑을 고백한다. 석중의 진심을 받아들인 은하, 그들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석중에게 찾아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은하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중의 은하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있지만 영화의 줄거리라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남한(한국) 사회에서 자살자는 하루 37명으로 국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이다. 대부분이 경제적인 문제, 먹고 사는 문제로 극한 선택을 한다. 날로 급증하고 있는 이혼 사유 중 ‘성격차이’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돈 문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죽고 못 산다’고 하다가도 돈 문제가 불거기면서 서로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폐인이 다 되어 남들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남편을 ‘꼭 살린다’며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아름다운 사연이 있다. 남편은 알콜 중독에다 불규칙한 영양 섭취로 인해 무릎 관절까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다. 거기에다 발가락 궤사까지 시작되어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다. 참 좋은 양반이었는데 어쩌다 알콜 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술을 끊어야 하는 병이기에 강제로 알콜중독 격리 병동에 입원 시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끊지 못하고 있다. 나아진 게 있다면 소주에서 막걸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집안 살림은 거들 났을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가족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들 교육 문제가 있어 같이 있을 수 없어 고민 하던 차에 대구에서 그나마 공기 맑은 조그만 교회의 문간방에 기거할 곳을 찾았다. 교회 나오고 안 나오고를 가리지 않는 내공 있는 목사라 ‘집이 비어 있으면 안 된다’며 자리를 내 주었다.


몇 변 얘기해 보지 않았지만 가슴에 분노가 가득 차 있다. 50년 넘게 살아  오면서 사연이 없을리 없을 테고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술을 가까이 한 게 화근이었다. 이 지경까지 오면 여자는 떠나기 마련이다. ‘자식 공부는 시키겠지만 같이 못 산다’고 해도 욕할 사람도 없다. 알콜 중독에 걸려 격리 치료까지 했음에도 술 없이 못 사는 사람을 거둔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장사도 잘 안 되는 통닭집 하면서 밤늦도록 일 하고 오면 만사가 귀찮은 게 사람이다. ‘내 몸이 천근만근’인데 천하 미남미녀라 해도 건드리는 것 자체가 싫다. 사람으로서 견디는 ‘한계수위’를 넘어서고도 남았을 텐데 ‘넌 내가 살린다’며 지극정성을 다 한다. 무릎이 아파 걷지 못하니 방안에만 있어 몰골은 엉망이다. 예전의 밝고 좋았던 그 얼굴은 간데없고 ‘피골이 상첩’한 몰골임에도 아내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알콜 중독인데도 간경화가 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40대 초반에 알콜 중독에 간경화로 온 가족 고생 시키마 북망산 넘어가신 큰 종형이 생각난다. 삶의 의욕을 잃어 버려 한두 잔 마신 게 깡소주 대병을 비원도 속이 안 차 간경화에 걸려 가뜩이나 없는 살림 다 날려 버리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백부님이 두 집 살림을 살다 돌아가신 연배와 비슷하니 부자간에 팔자도 희한하게 맞아 들어갔다. 아버지 그늘 없이 살다보니 별난 숙부들에게 수시로 온갖 잔소리에 시달렸다. 우리 아버지만 “두 집 살림한다고 애비 정도 못 느낀 불쌍한 놈들”이라며 챙겨 주셨을 뿐 명절에 보면 제사가 끝나자마자 일장훈시부터 늘어놓았으니 그 스트레스와 한이 얼마나 클지 나이가 드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형수는 어떻게든지 살려 보려고 온갖 애를 썼건만 술 없이는 못 살아 가족들 고생만 실컷 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할 사람을 간경화 치료에만 급급하다 보니 살리지도 못 하고 고생만 했다.


같이 머리 맞대고 살길 찾다보면 길이 전혀 없는 게 아니건만 ‘이혼도장’ 찍는 세태에 그래도 ‘저 인간은 내가 살린다’며 매달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오랜 병에 효자없다’고 했는데 몇 년째 알콜 중독으로 고생시키건만 온갖 투정 다 받아주며 웃어넘기는 그 내공은 정말 아름다움의 극치다. 사람이기에 돈 때문에 싸우다 자식새끼 내팽개치고 이혼하고, 사람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살린다’고 매달릴 수 있는 것 같다. 심신에 병이든 사람을 국가가 책임지고 최소한의 주거 대책만 마련해 준다면 지금보다 이혼율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갑갑하기 그지없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가 살린다’는 아내의 정성에 반만이라도 맞추어 술ㆍ담배 끊어 예전의 사람 좋던 모습을 보고 싶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정이 넘치던 양반이 저렇게 되어 너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