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교정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어느 학교에선가 학생들에 대한 폭력이 문제가 되어 쫓겨난 선생님이 우리 학교로 전근 오셨단 것이었는데..... 바로 그 선생님의 첫 수업 시간. 아이들은 나름 긴장하며 탐색전을 시작했지만 얌전한 학구파처럼 생긴 선생님은 학생들에겐 눈도 주지 않은 채, 칠판과 책만을 번갈아 쳐다보며 판서만 하고 계셨다. ‘아, 물선생님이구나.... 그 풍문’ 헛소문이었구나. 첫 대면에서 약간 움츠러들었던 아이들은 이내 느슨해졌고 어떤 넘은 뒤에서 여느 때와 같이 옆자리 놈과 대화를 시작했다. 이때, 여전히 판서는 멈추지 않은 채 조용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거기...뒤에서 주절거린 놈 나오너라.....’
당연히 아이들은 서로 눈치 보며 꾸물거렸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돌아 서며 한말 씀 더 하셨다.
“4,5,6분단 앞줄에서 여섯 번째 뒤로 앉은 놈들은 모두 앞으로....”
▲ 90년대 초 사복체포조, 일명 백골단이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아이들은 서로 제가 몇 번째인가를 확인하며 교단으로 나가야 했는데 모두 12명 정도였던가?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엄청난 매타작이..... 참으로 힘도 좋은 선생님이었다. 부러져 나가는 대걸레자루를 채우느라 주번은 수업중인 옆 반까지 뛰어 다녀야 했고, 수업종료 종이 울릴 때까지 아이들 비명소리와 철퍽대는 소리 이외엔 그 어떤 소리도 허공을 메우지 않았다. 그렇게 그 소문이 헛것이 아니었음을 실제로 입증했던 그 한 시간 이후, 그 참상에 관한 소문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갔고, 그 한해 우리 학년 어떤 반의 국어 시간도 참선 수행하는 절간 같은 모습에 다름없었다.
아..... 폭력은 한번만 확실히 보여 주면 되는 거구나....
한 삼년 군대에서 썩어 달라는 통지를 받고 성북역에 가자 대기하고 있던 군용열차는 나를 논산까지 데려다 주었다. 야밤이 되어 도착한 곳은 남자들은 다 아는 곳.... 바로 수용연대였다. 그렇게 연병장의 풀만 뽑으며 지내던 어느 날, 대대장이란 사람이 우리 모두를 모아 놓고 군번 호출을 하는 데 거기에 내 군번도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찜 당한 빡빡이들이 따로 모인 내무반. 어깨엔 밥풀떼기 몇 개가 얹혀 있고 얼굴은 썬글라스로 반이 가려진 어떤 분이 한 말씀하시길,
‘여러분은 영광스럽게도 대한민국의 하사관으로 차출 되어따!’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런 대한 남아의 길을 따르지 못하게따...라는 장정은 일보 앞으로!’
응? 하사관? 서로 서로 눈치를 살피며 주저주저하는 데 누군가 한명이 과단성 있게 일보 앞으로 나갔다. 이후론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친구..... 나이깨나 들었을 요즘... 궂은날에도 삭신 멀쩡히 지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영화 빼고 사람이 사람에게 그토록 심하게 얻어맞는 걸 이제까지도 실제 상황으론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을 짓밟았던 군화를 툭툭 털며 그 분이 다시 한 말씀 하셨다.
‘또, 누구 없나?’
우리는 서로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동시에 힘차게 외쳤다.
‘없씀다!’
▲ 7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기동본부에서 열린 ‘경찰관 기동대 창설식’에서 경찰관 기동대원들이 진압시범을 보이고 있다.
1965년,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사회주의 성향이 있는 도예종 등의 인물들을 기소하여 누가 뭐라 하던 눈치볼 것 없이 사법의 이름으로 선고 18시간 만에 8명의 사형을 집행했던 인혁당사건. 어떤 사람들은 ‘몇 명 안되는구만.....’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랬듯이 시청 앞에서 성조기 흔든 사람 한명만 잡아다가 죄를 조작해서 사형선고 내리고 다음날 바로 사형 집행하는 사건 하나 만들면.....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보기는 내 눈으로 직접 내 뒤통수를 보기보다 힘들어 질 일이다.
위의 세 가지 상황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누군가의 눈을 피해가며 은밀히 저지른 악행이 아니라 일부러 누구에겐가 보여 주기 위한 행위였다는 점이다. (이런 걸, 군대에서는 시범케이스라 부른다.) 자신이 그토록 무서운 존재란 걸 알리고, 이에 대해 반발하면 어찌된다는 걸 대놓고 보여 주기 위해 정당한 반대의사를 무력이나 비인륜적 방법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회자되는 문젯거리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한 이들은 절대 이런 짓 하지 않는다.) 촛불시위 연행자중, 여성 연행자에 대한 경찰의 조치, 이제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비인륜적 행위에 대해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니들도 잡혀 오면 이렇게 돼. 그니까...어찌해야 되는지 알겠지?’라며 대놓고 겁주기다. 법으로 보장한 국민의 의사표현을 막기 위해, 국민을 겁주는 정부요 국민에게 모멸감을 주는 정부다. 아니 언제부터 브래지어가 자살도구가 되었기에 기껏해야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된 여성들에게 이처럼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용렬한 행위를 한단 말인가?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해나 자결용으로 조선시대의 여인들이 품고 다녔다는 은장도. 이제 브래지어는 자살도구로 인정되어 현대판 은장도가 되었음을 이 나라 경찰이 선포해 주었다. 이러다가 어쩌면 팬티의 고무줄도 자살도구로 분류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사소하게 넘길 수도 있을 이런 소식에 민감해 지는 건, 이런 조치가 앞으로 이 정부가 이 나라 국민의 여론 수렴을 어떤 방식으로 수렴해 나갈 것임을 예고해 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어렵사리 진전시켜 온 민주주의도, 쓰레기 같은 가치관을 가진 한 사람의 영향력 앞에선 순식간에 퇴보할 수 있음에 관한 교훈도 MB정부는 너무나도 견(犬)실하게 우리에게 보여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암담해 지기만 하는 요즘이다. (한토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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