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10대들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사회

녹색세상 2008. 8. 21. 16:44
 

‘원인’ 따지기보다 ‘학교 이미지’만 고려

사흘에 두명 꼴 숨지지만 ‘숨기기’ 급급

 

  ▲ 촛불집회에 참석한 후 자살한 신양이 유서를 쓴 촛불 손팻말 앞면


ㅇ양이 숨진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같이 공부했던 학생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학교 쪽은 ㅇ양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려 대부분의 학생들은 소문으로만 그 사실을 들었을 뿐이다. 학교 앞에서 만난 ㅇ양의 일부 친구들은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다”,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후유증’을 호소했다. 친구 ㄱ양은 “영안실로 달려가기 전까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며 “충격이 너무 컸고, 지금도 문득 그 친구가 떠올라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 촛불집회에 참석한 후 자살한 손 팻말 뒷면에 쓰 있는 여고생의 유서


이 학교 3학년 ㅇ양은 “공부하는 건물이 달라 뒤늦게 후배들의 얘기를 듣고 알게 됐다”며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그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1학년 ㅁ양은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숨졌는데, 학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가고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뭔지 모르겠지만 허무함과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ㅇ양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학교에서는 ‘괴담’까지 떠돌고 있다. 1학년 ㅂ양은 “우리 학교에서 1년에 한 번씩은 학생들이 죽어 간다는 얘기가 나돌아 무섭다”며 “올해는 두 명이 죽어 학교에서 굿을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고 말했다.


10대들이 한 달에 20여명 꼴로 자살을 하고 있지만, ㅇ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책이나 사후조처는 미흡하기만 하다.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 학교폭력, 가정불화 등 학생들을 자살로 내모는 요인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 학교에서 실시하는 자살방지 교육프로그램은 형식적이고, 상담 체계는 너무나 부족하고 허술하기 그지없다. 학교는 자살 사건이 생기면 학생들이 동요하고 학교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어떤 후유증이 발생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학교가 숨기면 교육청도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현실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6년 10~19살 청소년 가운데 233명이 자살했다. 2000년 264명, 2003년 297명, 2005년 279명 등 해마다 200명이 넘는 청소년이 자살을 하고 있다. 자살은 청소년의 사망 원인 가운데 두 번째로 많다. 안동현 한양대 의대 교수(신경정신과)는 “청소년들은 주체성이 확립되지 못해 마음이 늘 불안한데다, 어른과 달리 상당히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 각별한 관심이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에도 수능 모의고사가 있던 날 특수목적고에 다니는 고3 수험생이 자살을 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과 학교는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입시 부담감이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 학교 3학년 ㄱ양은 “학교에서 친구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까,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충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서울 ㄴ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ㅂ양은 지난 3월 학업성적 등을 이유로 강원도 양양의 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수능 성적을 비관해 경남 창원의 쌍둥이 여고생 자매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에서 쉬쉬할 것이 아니라 나머지 학생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의정 이대의대 교수(소아정신과)는 “친구가 자살했을 경우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우울증에 걸리거나 극단적으로는 모방 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당장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더라도 친구의 자살이라는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마음에 남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엄청난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실제 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자살을 한 뒤 나머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 보니, 아이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며 “아직 죽음에 대해 현실감이 없는 시기라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또 “상담 과정에서 학교폭력 등 학생들의 자살을 불러올 수 있는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할 수도 있어 사후조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은 ‘자살은 개인의 욱 하는 성질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돌릴 뿐 사회적인 병리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이론가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배국이었던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없는  식민 지배에 시달리는 알제리민들에게만 나타나는 손떨림 병을 발견하고  원인을 찾아 고민했다. 집단적인 억압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정신병임을 알고 ‘식민 지배를 해결하지 않고는 정신과 질환을 고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음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상처 치유에 사회가 나서야지 방치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겨레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