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신상철 대구교육감 퇴진 운동이 무딘 이유

녹색세상 2008. 8. 22. 16:51

 

저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이자 건설노동자이고 진보신당의 당원입니다. 신상철 대구 교육감이 저지를 비리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당원들이 함께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고자 합니다. 다소 글 내용이 투박하더라도 애정 어린 비판으로 너그러이 받아 주실 줄 믿습니다. 이유는 많지 않고 단 하나, 교직원 노동자들이 평소 연대 투쟁에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사란 전문직의 환상에 젖어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과 구체적으로 함께 하신 적 있습니까? 물론 신분상의 특성 때문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우린 당신들과는 달라’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시기를 감히 권합니다. 교직에 있는 친구로부터 ‘아저씨, 아줌마’라고 누가 부를 때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은 것이 있습니다. ‘×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고개가 돌아본다고 하더군요. 자식들에게는 부모가 되고, 부모님에게는 자식이고, 동네에 가면 아저씨와 아줌마가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저씨ㆍ아줌마’란 호칭에는 고개가 돌아가지 않고 ‘선생님’이란 말을 들어야만 반응한 교원노동자 여러분들의 평소 자세에 대해 고민해 보신 적  몇 번이나 있습니까? 캐나다로 이민 간 목사인 친구 부부로부터 들은 말이 기억나는군요. 현지 가서 약 1년 정도 ‘아저씨, 아줌마’란 호칭이 그렇게도 어색하더라고 하더군요. ‘목사님, 사모님’이란 말에 이미 습성이 배인 탓에 환경이 변한 것을 빨리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한 동안 고생을 했다고 하기에 “별 걸 다 신경 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게 호칭이란  것도 모르고 살았느냐”며 핀잔을 준 적이 있습니다. 자식 없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교육 문제에 관한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의 현실입니다. 민주노동당 시절의 경험을 떠 올린다면 분회모임이나 다른 당원 모임에서 교원노동자들을 한 둘을 제외하고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일정이 빠듯하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이 적을 두고 있는 진보정당에 조차 얼굴 내밀지 있는데 어느 누가 동지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기본적인 생각과 자세부터 바꾸지 않으면 교원노동자들의 싸움을 외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웃을 대한 방식의 과오에 대해 교원노동자들은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고백을 해야 함께 할 길이 열린다고 믿습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아무나 하면 안 되는 직업이 ‘선생과 성직자’라고 양식 있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 역시 이 말에 상당부분 공감을 하고요.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업이기에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능력이 없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학자로 남아야 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들이 ‘성직자’라고 부르는 ‘목사ㆍ신부ㆍ승려’를 하면 안 되죠. 사랑은 커녕 남들의 가슴에 상처만 주는 짓을 하기 딱 좋죠. 저는 청소년 시절 인연을 맺어 은사님이라 부르는 분들을 만났고, 혈기 왕성한 청년시절 신앙의 부모님 같은 어른과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감히 스승이라 부르고 신앙의 부모님이라 부를 수 있는 분들을 만났으니 정말 영광이죠. 이 분들에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일생을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 신상철 교육감 관사가 있는 대구 남구 봉덕동 모 아파트 앞에서 거의 매일 시위를 하고 있는 전교조 조합원들.


 

말이 잠시 옆으로 빗나갔군요. 교원 노동자 여러분들이 참교육을 원하고 노동 여건 개선을 하려면 ‘연대투쟁’ 만이 살길입니다. 진보정당의 게시판에 신상철 교육감에 대한 글 하나 올라오지 않는데 동참을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이죠. 보건의료노조가 ‘의료의 공공성 강화’화 ‘영리병원 저지’를 내걸고 투쟁에 들어갔을 때 집중 타격 대상으로 찍은 대구 ‘영남대의료원’ 안에서만 싸웠을 뿐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연대 투쟁한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 했습니다. 광우병 정국 이 후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조에 대한 반응이 좋을 때 촛불집회에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언제 할 수 있겠습니까? 내부 사정이야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시민과 함께하는 싸움’을 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전술적 오류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앉고 있는 문제요 한계이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고립되어 외로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교조가 ‘시민과 함께하는 투쟁’을 만들지 않는 한 지금처럼 싸움은 외로울 수 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하루 빨리 특별성의 환상에서 벗어나 일반성인 ‘연대투쟁’의 대열에 함께 해 승리하시길 빕니다.

 

 

추 가: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라며 확인 즉시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애정 어린 비판이라 너그러이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