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KBS 대책회의’ 파문…청와대 ‘우린 듣기만 했다?’

녹색세상 2008. 8. 22. 15:47
 

신임 KBS 사장 인선문제로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KBS 전현직 임원들이 만나 ‘대책회의’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경향신문’ 2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은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만나 KBS 신임 사장 인선과정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또 김은구 전 KBS 이사, 박흥수 강원정보영상진흥원 이사장(전 KBS 이사), 최동호 육아TV 회장(전 KBS 부사장) 등 당시 KBS 새 사장 후보군을 이루고 있던 인사들도 참석했다. 특히 이 중에서 김은구 전 KBS 이사는 KBS 이사회가 21일 24명의 새 사장 후보 응모자 가운데 추려낸 5명에 포함돼 주목된다. 사실상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등이 참석한 당시 자리에서 ‘낙점’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대통령이 사고를 치면 의혹을 만들어 물타기 하는 장본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이동관 “정말 듣기만 했다”…‘해명’은 했지만 의혹은 오히려 증폭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정 실장은 “KBS 문제가 매우 중요하니 후임 사장을 잘 정해야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는 “김인규 씨가 힘들어졌다. 후임 사장을 잘 뽑아야 한다”는 발언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가 나온 직후 청와대는 곧바로 해명에 나섰지만 의혹은 오히려 증폭됐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날 “저를 포함해 정정길 실장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하면서도 “그러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KBS의 공영성 회복과 방만경영 해소라고 하는 과제에 대해 방송계 원로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자리”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잘 알다시피 박흥수 위원장은 방송계 경험이 풍부한 분이시고, 최동호 전 부사장도 KBS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는 분”이라면서 “또 김은구 씨도 KBS 사우회장이시니까 직원들의 처지나 내부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 아니냐”고 강조했다. ‘여론수렴’ 차원에서 만들어진 자리라는 해명이다.

 

▲ 8월 21일 오전 여의도 KBS본관 3층 제1회의실 앞에서 사장 후보 서류심사를 위한 이사회를 저지하기 위해 노조원과 사원행동 직원들이 청원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이동관 대변인에 따르면 이 자리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주선으로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변인은 “최시중 위원장께서 청와대 쪽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연락을 해 왔고, 정정길 실장님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제가 제안을 해서 모시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인선과 관련해 누가 적임이다, 아니다는 이런 이야기는 일체 없었다”며 “잘못 이야기를 하면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정정길 실장과 저는 정말 듣기만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KBS 공영성 회복’을 위한 ‘원론적인 언급’밖에 없었다는 해명도 이어졌다. 이 대변인에 따르면 유재천 이사장은 “KBS이사회가 자율성을 갖고 예산편성 문제나 사장인선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참석자분들로부터는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인선이 중요하다는 의견개진이 많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KBS 이사장, 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신임 사장 물망에 오르던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임 사장 인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 대변인은 “보도에는 ‘김인규 씨가 힘들어졌다’는 발언이 있었다고 나왔는데 (김인규 씨의 포기는) 당시 결정된 일이 아니었다”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사로서 ‘KBS 장악’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김인규 씨는 지난 19일 ‘응모포기’를 선언했다. 이 대변인의 주장대로라면 청와대 측은 김인규 씨의 결단이 나오기 불과 이틀 전까지도 전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여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 대변인은 “이 자리를 편하게 생각했던 것은 제 불찰”이라면서 “알려지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 자체가 누구를 낙하산으로 하자고 논의하는 자리였다면 오히려 더 고려를 했겠지만, 편하게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 자체가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경위에 대해 이 대변인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누가 도청을 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대변인은 “차라리 도청 내용이 밝혀지면 의혹이 해소될 텐데…”라고 변명은 했으나 의혹이 불거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났다 하더라도 오해는 생기기 마련이다. 오해 받을 짓은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 앞에서는 아무리 간 큰 사람도 바른 말 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처럼 ‘강경일변도’로 대통령이 나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낙점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의혹투성이임을 알아야 한다. 청와대는 의혹을 증폭시키지 않으려면 방송 장악 음모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