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독립운동가 이병희 여사에 시청자들 ‘눈물....감동’

녹색세상 2008. 8. 22. 15:23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친 이병희 여사. 그녀가 되찾고자 했던 조국의 의미와 아픈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21일 KBS1 ‘사미인곡’이 조명했다. 올해 아흔 한 살의 이병희 여사는 96년 독립운동의 업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은 애국지사다. 16세 때부터 항일운동에 몸담아온 그녀는 무려 5년여의 옥고를 치룬 것은 물론 의열단으로 활동하며 아픔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병희 여사의 가족은 아버지와 큰 아버지를 비롯해 친척 이육사선생 까지 항일 운동에 몸담았기에 늘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가족들을 보며 자라온 소녀 이병희에게 독립운동은 그야말로 숙명과도 같았다. 16세 때 방적 공장에 위장 취업해 항일투쟁을 벌인 그녀는 결국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4년 6개월이라는 긴 세월, 모진 고문에도 그녀는 동료들과 조국을 떠올리며 굴복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다. 그거 밖에는 몰라”

“열 번을 죽였다 살리고 그렇게 고문을 했어. 그러면서도 웃고 동지를 떠보고 고맙다고. 동지의 사랑이란 건 한 없이 기쁜 거야. 생명을 같이 나누니까”


22세가 되어서야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소한 그녀는 북경으로 망명한 뒤 이육사선생의 권유로 의열단의 연락책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폭탄재료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향한 이육사선생이 체포됐고 이병희 여사 역시 곧 북경 형무소에 수감됐다. 이어 체포직전 그녀의 기지가 빛을 발했다. 그녀는 순사의 눈을 교묘히 따돌려 600여명의 독립 투사명단을 빼돌리는데 성공했다. 해당 문서가 순사의 손에 들어갈 경우 독립투사들의 죽음이 뻔한 상황. 반짝이는 그녀의 기지가 600여명의 목숨을 구한 셈이 됐다. 수감 된 후 죄목도 없이 총살형을 언도받은 그는 이육사 선생의 도움으로 5개월 만에 북경형무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출소한 지 5일 만에 이육사 선생이 숨을 거두었고 그녀는 차게 식은 선생과 그의 작품들을 대한민국 땅으로 이끌었다. 시간이 흐르고 광복 63년이 다가왔다. 영원히 청년인 채로 남아있는 그의 동상 앞에서 이병희 여사는 다시금 대한민국을 부탁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을 지킨 그녀는, 방송이 말하듯 강철로 된 무지개였다. 시청자들 반응 역시 뜨거웠다.  (TV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