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역사의 죄인’들을 잊지 말자.

녹색세상 2008. 8. 12. 16:31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고 곳곳에서 노동조합 설립의 움직임이 있었다. 기계처럼 시키는 대로 일만 하던 노동자들이 기본 권리 찾기에 나선 것이다. 당시 출석했던 민중교회인 달구벌교회에서 ‘노동조합은 정당한 요구’라며 조직화를 뒷받침 해 주었다. 실무를 맡고 있던 후배가 ‘제3자 개입’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었는데 구속 영장도 없이 교회 안에 구두발 신은 채로 3~40여 명의 사복경찰이 들이 닥쳤다. 교회 밖에는 100 여명의 경찰 병력이 깔려 있었고, 당시 권경호 대공계장이란 자가 진두지휘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우스운 얘기다. 얼마나 엉큼하고 능구렁이였는지 구둣발로 교회에 난입해 놓고는 남들보다 몇 년 늦게 목사 안수를 받은 담임 목사에게 ‘(목사) 승진을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대구지역 민중교회 교인들이 북부경찰서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고 난리가 났다. 당시 분위기에서 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내 일처럼 함께 싸웠다.

 

  ▲어린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향해 소화기를 뿌려대는 경찰의 폭력. 현장 지휘관의 명령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몇 년 후 30대 초반 수성구 상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무렵 ‘권경호’를 봤다. 퇴직하고 산에나 다니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몇 번을 참다가 “권경호 계장이시죠” 하니 깜짝 놀라며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87년 달구벌교회 이동기 사건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상동에 사니 가끔 볼 텐데 당신 잊지 않고 있다.”고 하지 제대로 말을 할 줄 몰랐다. 일요일 예배를 마친 후 학생들과 등산을 오가며 몇 번 마주 쳤는데 나를 먼저 발견하면 멀리서 피하는 걸 봤다. “때린 놈은 다리 오므리고 자고, 맞은 놈은 펴고 잔다”는 옛말이 딱 맞았다.


위에서 시킨 일이고 빨갱이라서 잡아다 패고 고문한 게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저지른 뻔뻔하기 그지없는 해 온 짓이었다. 지금의 어청수와 한진희, 현 서울경찰청장인 김석시는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물불 안 가린 ‘역사의 악질’이다. 백골단까지 부활시키고 ‘국민사냥’을 위해 ‘체포ㆍ구속’에 대한 혜택까지 주겠다는 발상을 노골적으로 해대는 그들의 머리에는 군사독재정권 시질 경찰에 발 들여 놓고 해댄 습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그런 죄인들을 청산 하기는 커녕 필요에 따라 사람을 죽여도 책임조차 묻지 않는데 어느 누가 ‘피 비린내 나는 진압’을 마다하지 않겠는가? 피를 부르는 진압 후에는 격려금과 진급이 기다리고 있는데. 노무현도 이 부분에 대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거기에다 이명박은 취임 100일도 안 되어 수도 서울 곳곳에 수 만 명의 전경을 배치하지 않고는 권력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폭압권력이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1960년 일본의회에 시위대가 난입하자 수상이 ‘진압명령’을 내렸으나 ‘수상 당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다’며 경시청장은 거부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시민들에 대한 진압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남도경국장은 ‘무고한 시민들을 진압할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했다. 아무리 막가는 세월이지만 이명박 정권이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만 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상층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권력의 졸개’를 넘어 인간사냥까지 하는 ‘사냥개’로 설친다. 그 똑똑하고 자부심 강하다는 경찰대학 출신 중 “우린 국민의 경찰이라 시위 진압을 할 수 없다”는 놈 하는 없는 게 대한민국 경찰의 현 주소다. 시위 진압이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니 ‘육군에서 복무하게 해 달라’는 전경과, ‘진압의 도구’를 거부하며 양심선언을 하고 ‘병역거부’를 해 감옥행을 자처한 의경은 있으나 경찰 간부는 한 명도 없다.


역사는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현 경찰 수뇌부는 알아야 한다.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을 향해 ‘놈놈놈’이라고 지껄인 인간들을 역사는 반드시 기억한다. 곳곳에 시민들이 가진 카메라가 있어 언제든지 그 얼굴을 찍을 수 있다. 어청수ㆍ한진희ㆍ김석기와 ‘물대포가 안전하다’고 지껄인 명영수 같은 인간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의 정의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이젠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아 있으니 생생한 살아있는 기록임을 알아야 한다.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경찰의 저지른 잘못은 ‘국민의 경찰’이 아니라 일개 권력의 졸개를 자처한 명백한 증거다. ‘역사의 죄인’들을 우린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