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발달, 대의 정치 도전받아?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관련 “뼈저린 반성”을 얘기한 지 불과 20여일 만에 “정보전염병을 경계해야 한다”며 또 다시 촛불집회를 비하하는 등 180도 태도를 바꿔 논란이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18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선진사회는 합리성과 시민적 덕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며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특히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infodemics)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보전염병은 정보(information)와 유행병(epidemic)을 합성한 신조어로 “왜곡된 정보와 엉뚱한 소문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자칫 정치, 안보는 물론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이 대통령은 두 달 이상 지속된 촛불집회의 원인이 ‘정보전염병’에서 기인했다고 판단하는 이명박의 인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말을 수시로 바꾸는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국민들이 많음을 모르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돌이켜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저는 마음이 급했다”며 왜 ‘무리하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수시로 하고 있다. 당시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고, 미국과의 통상마찰도 예상됐다”며 “그러다보니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분명히 ‘자책’했다. 촛불집회를 불러온 쇠고기 졸속 협상의 원인이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에게 있었음을 직접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20여일이 지난 지금 이 대통령은 표변했다. 촛불집회의 원인을 정보전염병에서 찾는 가하면 촛불집회를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 등에 비유하는 등 망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한 국회 연설에서 “우리 사회는 무형의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축적이 크게 부족하다”며 “법과 질서가 바로서지 않으면 신뢰의 싹은 자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뢰를 무너뜨린 게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여일 전 “뼈저린 반성”…지금은?
이 대통령은 “최근 쇠고기 문제는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역시 20일 전 특별 기자회견 때의 태도와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다.”며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국회 개원연설에서는 “국민의 목소리에 더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한편, 법치의 원칙을 굳건히 세워 나가겠다”고 말해, 한편으로는 국민 여론을 수용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반성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말을 바꾸고 국민들을 향해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국정의 중심을 두겠다”며 “더 낮은 자세로 일 하겠다”고 말해, 스스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음을 시인했다. 또한 이 대통령이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며 “이에 대해 정부와 국회는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의 민주주의제’는 최고의 선이 아닌 ‘직접 민주주의제’의 보완제로서 언제든지 국민의 직접 정치참여가 보장되어야 함에도, “대의정치가 도전받고 있다”는 식의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날 개원 연설에서 쇠고기 파동에 대한 유감 표명을 끝내 하지 않은 이 대통령은 “먹거리 문제만큼은 ‘국민건강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며 국무총리 산하에 민간이 참여하는 ‘국민건강대책기구’ 추진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다고 수시로 말을 바꾸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제발 거짓말 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국정 장악 능력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은 것은 꿈에서 깨어나 정신 차리거나 하야하는 길 말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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