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시민 구도 보수-진보 전환 노리고
경제침체ㆍ실정, ‘잃어버린 10년’ 탓 돌리고
▲ 5일 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국민승리 선언 촛불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수십만명이 모인 민심조차 읽지 못한다면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사진:한겨레신문)
한나라당이 종교계의 ‘평화 촛불’도 ‘좌우 대결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쇠고기 수입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맞서 타오른 시민들의 촛불에 상투적인 ‘이념 덧칠’을 시도하는 것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에서 “일부 진보 성향의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꺼져가는 촛불을 살리려 하고 있다”며 “진보 정권 10년을 거쳤는데 이 정도 진보 세력의 저항을 예상치 못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아주 나이브한 정부가 된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에 앞서 열린 고위당정 회의에서도 “초기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촛불시위가 지금은 프로들의 잔치, 진보들의 잔치로 변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처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비폭력을 외치는 종교인들조차 일부 진보 세력의 저항으로 몰아가는 것은, 기존의 ‘정부-시민’ 구도를 ‘보수-진보’의 프레임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광장으로 나온 이들을 ‘과거 10년 정권’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이념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시민들을 시위대에서 분리시키고 한편으론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보겠다는 것이다.
▲ 국민들의 요구는 ‘전면 재협상하라’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홍 원내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이 대통령은 진보정권 10년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다”며 “이 대통령을 만나 ‘아랫배에 힘줘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촛불시위는 이 대통령의 책임이 아닌 만큼, 배짱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날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 ‘시민 집단소송제’ 등을 통해 민사상 책임을 묻기로 한 것도 구도를 반전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시위 참가자들과 도심 상인들 사이의 ‘민간 대 민간’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고, 원인 제공자인 정부는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 전환은 촛불을 불타오르게 한 원인을 이명박 정부의 실정 대신 ‘좌파정권 10년’의 적폐로 떠넘기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겪고 있는 시련과 고난이 스스로 초래한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형성된 진보 세력의 의도적인 도발로 해석하는 것이다. “앞으로 공기업 민영화 등 각종 현안마다 촛불이 나올 것”이라는 홍 원내대표의 말 속엔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10년 진보’의 ‘묵은 소리’로 간주하고 밀어붙이겠다는 뜻도 엿보인다.
정부가 최근 경기 침체를 “제2의 아이엠에프(IMF)”에서 “제3차 오일쇼크”로 재 정의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책임 회피 전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 정부의 경제책임자가 환률 조작을 해 잘렸다가 등용되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분명하다. 구제금융 위기가 정부의 외환관리 실패 탓이었다면, 오일쇼크는 외부 경제 여건의 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념으로 편을 가르는 방식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부의 잘못된 쇠고기 협상을 그나마 바로잡은 건 시민의 힘 아니었느냐. 정부는 촛불시위대를 벼랑 끝으로 모는 대신 국민들한테 지는 모양새를 취해서라도 퇴로를 열어줘야 이 싸움이 끝난다”고 말하고 있건만 총대를 홍준표가 지려고 하는 걸 보니 국민들의 분노로 가득 찬 화살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하려는 게 분명한 것 같다. 홍준표가 맞겠다고 달려든다면 확실히 쏘아 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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