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경찰은 정녕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려는가?

녹색세상 2008. 7. 4. 16:58
 

‘국민의 권리와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대구 지하철 1호선 공사 중 상인역에서 일어난 도시가스 폭발 사고 현장에서 일어난 한 부부의 이야기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같이 출근을 하는데 현장의 복공판이 날아가는 사고가 나 남편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아내는 ‘당신 위험하다’며 말리자 “내 직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인데 가야 한다”며 극구 말리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몇 발걸음을 안 옮겼는데 2차 폭발이 일어나 남편은 아내가 보는 앞에서 공중으로 날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고가 일어나면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인다’는 소방공무원인 후배의 말을 듣고 ‘저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돌아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마다하지 않고 사건 현장에서 열심히 뛰느라 집에 들어갈 틈도 없어 ‘어린 자식들 잠든 얼굴만 보고 나온다’는 오래도록 수사 분야에 종사해 온 후배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라 글을 쓰기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조폭을 잡으면 그리도 신난다는 후배는 전형적인 형사 체질이죠.

 

  ▲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인권운동 단체들의 ‘경찰폭력에 대한 항의’ 기자회견 장면


저는 모든 권력은 철저히 분산시켜 상호견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밝힙니다. 경찰의 수사권 역시 독립해야 하며 다양한 수사 기관을 만들어 서너 개로 분리해야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받는 불이익이 적다는 견해를 먼저 밝히며 이 글을 쓰려 합니다. 이런 전제 하에 쓰는 것이니 내용에 대해 편견 없이 읽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을 보고 많은 반성을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반성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하라” 말을 던지지 마자 경찰은 ‘강경진압’ 일변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깨고 차관급인 어청수 경찰청장을 배석 시켜 주는 등 ‘특전에 감읍’한 나머지 기자들과 점심을 같이 한 자리에서 “80년대 식 탄압이 어떤가 보여줄까”라며 망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60여일 넘게 이어지는 촛불집회의 주요 핵심은 광우병으로부터 ‘건강권’을 지키고 ‘검역주권’을 찾아오라는 국민들의 지극히 소박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임을 모르는 경찰관이 있다면 옷 벗고 집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권리와 생명’ 보다 더 소중한 게 대한민국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녕 사기에 불과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1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어떤 국가기구나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짓이란 건 요즘 초등학생도 압니다.


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힌 여대생이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닭장차 밑으로 몸을 굴렸는데 다시 나오자 또 짓밟고, 어린 아이가 탄 유모차에 화학물질인 소화기를 뿌린 게 전경개인의 ‘욱하는 성질’ 때문인지 현장 지휘관의 강압적인 진압명령 때문인지 묻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강제 연행해 경찰서로 끌고 갔으며 그 와중에 성추행까지 저질렀고, 폭력 진압에 항의하는 국회의원에게 여럿이 달려들어 ‘국회의원이면 다냐’며 사정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등 경찰은 막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책임은 현장지휘관과 한진희 서울철장ㆍ어청수 청장이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명박까지 책임이 이어짐은 물론이죠. 경찰의 임무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치안확보’를 해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음을 현직 경찰은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2008년 대한민국 경찰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국민을 향해 사정없이 휘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 없으니 육군으로 보내 달라.”는 전경 외에는 아무도 찍소리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헌법 제7조에 위반되는 행위입니다. 경찰의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민주노동당의 이영순 의원을 방패로 찍고, 권영길 의원 사무실 난입까지 하는 등 헌법기관을 철저히 모독하고 짓밟았습니다. 작년 이랜드ㆍ뉴코아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함께 있던 심상정 의원은 상의가 벗겨지는데도 불구하고 건장한 체격의 사복경찰이 달려들어 끄집어내었습니다.


헌법기관으로서 의정활동을 위해 한미FTA 협상장인 신라호텔에 들어가는 것 조차 원천봉쇄했습니다. 평택 대추리의 피비린내 나는 진압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위에서 시킨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경찰 수뇌부와 현장 지휘관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추리에서 현장을 직접 지휘한 당시 서울 시경기동단장인 이종무는 “야, ××××중대 뭐해. 밀리면 너네 청장에게 이른다”며 강경진압을 진두지휘해 저 사람이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이 맞는지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6월 30일 한겨신문 만평. 1980년 광주학살의 계엄군 경찰은 총만 안 들었을 뿐 너무나 흡사하다.


왜 지금은 진압 거부하는 경찰 간부는 없는가?

 

그렇게 해서 경찰이 얻은 게 뭐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력에게 약하고 진보세력에게는 강압적인 지금의 모습이 경찰이라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슬이 시퍼런 1980년 5월 광주에서 전두환 군부의 시위진압 명령에 당시 전남도경국장은 ‘진압거부’를 했습니다. 1960년 일본에서는 시위대가 의호에 뛰어들어 수상이 “끌어내라”고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 당신이 잘못해서 그렇다”며 거부를 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1980년 군사독재 정권 시절 만 한가요? 대통령을 비유해 ‘2mb’, ‘쥐박이’라고 할 정도로 시대는 엄청나게 변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조직은 아직도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있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민의 ‘권리와 생명’보다 권력이 소중할 수 없고, 경찰의 자존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촛불집회는 지극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거리축제’요 ‘민주주의의 체험현장’으로 승화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여기에다 물대포를 쏘고 곤봉으로 두들겨 패면 방패로 내려찍는데 어느 누가 저항하지 않겠습니까? 나이 쉰을 바라보는 저라도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행동을 할 것입니다.


아니, 방어를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저의 생각은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힙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 할지라도 청와대 100미터까지는 시위가 가능한데 왜 그 보다 훨씬 먼 500미터가 넘는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막는 것은 경찰이 먼저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6.10항쟁기념촛불문화제’에 대비해 어청수 청장은 87년 군사독재 정권이후 처음으로 경찰의 최고 경계태세인 ‘갑호 비상경계령’을 내려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을 서울의 새로운 문화재로 등장한 ‘명박산성’에 가두는 수모를 당하게 했습니다. 피막이 두꺼운 그리스유가 발린 컨테이너에 태극기까지 걸어 ‘국기목독’까지 저질렀습니다. 국기 모독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르지 않는 종로서장은 ‘위에서 시킨 일’이라고 했습니다.


곳곳에 ‘명박산성’을 쌓고 국민의 이동권 마저 방해한 것은 실정법을 떠나 위헌입니다. 공권력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법률에 근거를 두되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군화발로 밟았다’고 하니 군화가 아니라 ‘운동화’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이명박에 반성문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초기 강경진압 일변도로 나간 것은 지쳐 있는 전경들의 내부 반란을 의식한 것이라는 말은 ‘내부 동요’의 조짐이 있다는 증표죠.


서울2기동대의 동요를 막으려 한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들으면서, 앞으로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젊은이들을 국민을 향한 전쟁에 동원하는 몹쓸 짓을 해 그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음을 경찰 수뇌부와 현장 지휘관들은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80년 5월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어 명령에 따라 시민들에게 발포한 게 너무 괴로워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병원을 수 없이 들락거리고, 속죄하는 심정으로 머리 깎고 입산 해 속세와 인연을 끊은 사람들의 아픔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지금 경찰은 기본부터 새로 배워야 합니다.


경찰은 정권이 아닌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


경찰은 ‘국가체제 수호’라는 이명박의 말 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하는 편에 서야 합니다. 가치중립적인 선택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더 의상 희생을 줄이고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광우병쇠고기’ 정국에서 경찰이 보여준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크나 큰 실망을 주었고, 여러분들이 그렇게도 원하고 보편적인 치안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수사권독립’을 멀리 차 버렸습니다.


아무런 힘없는 서민들을 위해서는 ‘그래도 수사권 독립’일 필요하다는데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지금 국민들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무 멀리 나가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발걸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경찰이 국민으로부터 받을 것은 ‘외면’ 말고는 없습니다. 정권은 경찰을 철저히 이용할 뿐이지 결코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라도 국민을 진압하는 경찰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경찰 본연의 임부로 돌아오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부천경찰서에서 일어난 성고문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과잉충성이 빚어낸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피해자의 상처가 너무나도 컸다는데 이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당시 가해자인 문귀동을 정권이 어떻게 했는지를 안다면 ‘위에서 시킨 일’이라고 치부만 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연일 촛불집회에 참석해 현행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