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전국 일선 경찰서에 촛불 정국 타개책과 함께 정부 지지세력 복원 방안 수집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정부가 쇠고기 정국 돌파를 위해 관계기관 총동원 태세를 보이는 가운데 경찰이 강경진압·원천봉쇄에 이어 ‘정치 경찰’ 역할까지 해 온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민주화 20년의 최대 성과인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되며 다시 민주화 이전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향신문이 30일 단독 입수한 A4 1장짜리 경찰 내부 문건 ‘국정 안정을 위한 국민대통합 방안에 대한 제언’은 지난 24일 경찰청이 전국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 내려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은 ‘미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 등에 대한 제언 수집’이란 부제와 함께 구체적인 수집 자료 5가지를 적시하고 있다.
▲ 6월25일 오후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에 반대하며 청와대 입구 경복궁역 부근에서 주부들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경찰이 방패로 아이들이 탄 유모차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중 4번째 항목은 ‘전통적인 정부 지지 세력을 복원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적혀 있었다. 2번째 항목은 ‘진보단체 등 반대세력과의 대화와 포용을 추진할 경우 포용 범위와 접근 방식 및 구체적 추진 방안에 대한 의견’ ‘구체적인 포용 범위와 방식 등에 대한 여론 및 추진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 등’이 수집 대상으로 요구가 적혀 있었다. 문건을 받은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지난주 관련 지시를 받긴 했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지시가 내려왔나 하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며 “본청(경찰청)이 급격히 정치성향을 띠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정치적 의도가 느껴지긴 하지만 직무규정 상 치안정책 관련 정보수집 업무를 계속 수행해왔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의 정치 중립을 훼손하는 지시뿐 아니라 문건에 나타난 ‘전통적 정부 지지세력 복원’ ‘진보단체 등 반대세력’ 같은 표현은 현 경찰의 정치 편향성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고려대 법대 김기창 교수는 “경찰이 국민을 지지 세력과 반대세력으로 나눠가며 스스로를 정치 집단화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본연의 업무인 범죄정보 수집도 아닌 일을 청와대나 한나라당 대신 경찰이 앞장서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택근 변호사는 “경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지 ‘정부 지지세력 복원’을 위해 힘쓴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업무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같은 일을 또 다른 권력기관이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그대로 반영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며 “모든 사회현상은 궁극적으로 치안문제이고 관련 정보 수집은 정보 분야의 고유 업무”라고 해명했다.(경향신문/장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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