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이거 최루액 탄 거 아니냐”…시민들 물대포 ‘무장해제’

녹색세상 2008. 6. 29. 05:31
 

타이어 공기 빼고 카메라 전선까지 ‘절단’

“얼굴 찍히면 문제”…기자들 접근 막기도

 

 ▲ 28일 오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대가 서울 시청 앞에서 경찰의 살수차 3대를 무장해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8일 오후 5시반께 경찰의 살수차 3대 등이 시위대에 의해 파손됐다. 경찰이 촛불시위에 대한 진압 방식을 검거 위주로 바꾸고 물대포에 최루액과 형광색소를 섞어 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데 이어 어청수 경찰청장이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80년대식 강경진압을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하다”며 자극하자, 시민들이 ‘강경진압’의 상징물인 살수차를 ‘무장해제’ 시킨 것이다. 이날 촛불집회를 기다리며 시청 앞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은 때마침 광장 옆 도로를 지나가는 경찰 살수차 3대와 봉고차 1대를 막아섰다. 커브길이고 차량속도도 느려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애초 몇몇 시민들이 나섰으나, 금새 시민 수백명이 모여들어 차량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차 안에 있던 경찰들도 워낙 많은 시민들이 에워싸자 차량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 28일 오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대에 의해 서울 시청 앞에서 경찰의 살수차 3대가 무장해제 되어 시민들의 낙서로 얼룩졌다. (사진: 연합뉴스)


시민들은 곧 “이거 최루액 탄 거 아니냐”, “오늘 밤에도 우리한테 뿌릴 거잖아” 등을 외치며, 차를 부수기 시작했다. 차량 타이어의 공기를 빼고, 밸브를 열어 살수차 안의 물을 뺐다. 일부 시민들은 차 앞 유리와 차 위에 달린 카메라 렌즈에 락카 칠을 하고 전선을 끊었다. 차 트렁크에 담긴 수리용구와 살수 관련 기계 장치 등도 성난 시민들에 의해 부서뜨렸다. 일부 시민은 살수차 한 대의 앞좌석 유리를 깨기도 했다. 시민들은 “얼굴이 찍히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카메라ㆍ사진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막았다. 파손된 경찰 차량은 서울이 아닌 부산 및 경남 지역에서 올라온 차들로 밝혀졌다. 실랑이 끝에 차량 밖으로 나온 경찰들은 “부산에서 왔다. 앞쪽 순찰차를 따라왔는데 공교롭게도 시민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와버렸다”고 말했다. 앞장섰던 순찰차는 억류되지 않았다.


살수차가 막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원준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장을 비롯한 경찰 5~6명도 시민들에 의해 제지당한 채 돌아갔다. 김 서장은 “대화가 안 된다. 어떻게 할지 더 고민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김아무개(41)씨는 “시민들이 많이 화난 것 같다”며 “방금 전에도 안국동 쪽에서 경찰이 소화기를 쏘며 시민 5명을 연행해 갔는데, 강경진압의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빼앗은 경찰의 살수차량 3대와 봉고차 1대는 타이어 바람이 빠진 상태 그대로 방치돼 있다. 지나던 시민들이 이들 차량에 이명박 대통령과 어청수 경찰청장을 규탄하는 낙서와 스티커 등을 붙여 놓았다. (한겨레/최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