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ㆍ목동ㆍ분당 등 현장에 가보니…
중대형서 30평형대로 하락세 확산
대출이자ㆍ보유세 부담돼 매물 속속
6월 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A공인중개사 사무실. 20평 남짓한 공간에 5개의 책상이 있었으나, 최근 이 중 2개가 치워졌다. 김모 사장은 "임대료도 못 낼 정도로 거래가 없어 보조 중개원들을 정리하고 용산으로 옮겨갈 채비를 하고 있다"며 "이미 강남에 있는 중개업자 상당수가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지난 5~6년 간 철옹성을 구축했던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 불패'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집값이 최고 3억~4억원씩 폭락하고, 거래가 '실종' 상태에 이르는 등 그간 과도했던 가격 거품이 빠르게 걷히고 있다. 서울 강남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 분당ㆍ용인ㆍ과천ㆍ평촌 지역에서도 급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추가 하락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 민감한 중개업자들은 이미 ‘강남 탈출’ 대열에 합류했다.
무너지는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
강남구 대치동에서도 ‘알짜배기’로 통하는 동부센트레빌 인근 중개업소 유리벽에는 ‘148㎡(45평)형 21억원’이라고 붙여져 있었다. 인근 박모 중개사는 “1년6개월 전만해도 24억원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20억원 선도 위태한 상황”이라며 “참여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중과에도 끄떡없던 시세가 요즘 완연히 꼬리를 내렸다”고 전했다. 더욱이 올해 봄만 하더라도 재건축 단지와 40~50평형대의 중대형 위주로 가격이 떨어졌으나, 최근엔 실수요자가 많이 찾는 30평형대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급매물 패턴도 다양해지고 있다. 도곡동 C공인 관계자는 "올해 초 만해도 1가구2주택 양도세 부담으로 급매물이 한 두개 나오던 게 고작이었는데, 최근엔 대출이자나 보유세 부담을 피하려는 매물이 꽤 쌓이고 있다"면서 “급매물이 워낙 많아 강남 진입을 계획하는 수요자가 있긴 하지만, 추가 하락의 여지가 많아서인지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서초동 A아파트 112㎡(34평)형도 지난해 말 호가가 최고 13억8,000만원에 달했으나, 최근 3억7,000만원 떨어진 10억1,000만원 선에 형성됐다. 매력적인 급매 가격이지만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양천구 목동의 신시가지 30평대 아파트도 3억원 가까이 떨어져 지난해까지 13억원 하던 115㎡(35평)형을 10억원이면 살 수 있다.
1년 이상 이어진 가격 하락세가 그칠 기미가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가격 하락세가 더 가파르다. 올 들어 수천 가구의 신규 분양 물량이 쏟아진 용인 일대는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과 분양 업체들의 한숨소리만 깊어 가고 있다. 2006년 말 이른바 '상투'에 중대형 아파트를 잡았던 수요자들은 대부분 2억~3억원씩 손해를 본 상태. 상당수가 손절매를 감수하고 되팔려 하지만 매수자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 잠실 재건축 단지 입주를 앞둔 이지숙 씨는 요즘 1주일에 두세 번씩 현재 살고있는 경기 용인시 성복동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를 찾는 게 일상이 됐다. 집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되도록 문의전화 몇 통 받은 게 전부다. 당초보다 5,000만원이나 낮춰봤지만 찾는 이가 없기는 매한가지. “급하면 5,000만원 더 내려보라”고 거드는 중개업자와 실랑이까지 벌였다. 용인시 성복동 S공인 관계자는 “잘 나갈 때 시세에 비해 2억~3억원씩 빠진 매물이 허다하게 널려 있어 속을 태우는 집주인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강남 못지않은 상승세를 보였던 경기 분당도 최근 파크뷰 주상복합 등을 비롯해 수억 원씩 떨어진 아파트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서현동 S공인 관계자는 “분당과 용인 일대 중개업자들 가운데는 서울 강북 등으로 옮기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속이 타 들어가기는 건설사들도 마찬가지. 경쟁적으로 계약금을 낮추고 중도금까지 대납해 주는 파격 조건을 내세우지만, 소비자들은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다. 용인에서 분양 중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용인 불패를 어느 정도 믿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에 훨씬 못 미쳐 회사가 비상 상태”라고 말했다.
과천ㆍ평촌 집값 하락의 끝은
분당과 용인에서 촉발된 버블세븐의 연쇄 붕괴는 과천ㆍ평촌ㆍ안양 등지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평촌신도시 목련마을 단지 내 상가 B공인중개 사무실. 최근 가격 동향을 묻자 문모 대표는 “거래가 돼야 시세가 있지, 매물로 나와 있는 가격이라 해봐야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다”며 “전ㆍ월세 거래나 좀 있으니 그나마 입에 풀칠을 하는 형편”이라고 푸념했다. 인근 명성공인 김모 대표는 “8억5,000만원 하던 120㎡(40평)형 아파트 7억원 선으로 하락했다”며 “시세보다 2억원이나 싼 급매물도 한 달이 넘도록 거래는 커녕 문의조차 없다”고 털어놓았다. 안양시 범계동 행운공인중개사는 “12억원 선이던 S아파트 48평형이 9억~10억원에 거래될 정도로 가격이 급락했다”며 “최근 준공된 송파 및 과천 재건축 단지에 입주한 1가구2주택자들이 급매물을 대거 내놓으면서 집값이 더 떨어졌다”고 말했다. 과천시 용문동 B공인 관계자는 “인근에 재건축 단지 입주가 이어지면서 물량 증대에 따른 가격 하락세가 심각하다”며 “금융권의 대출 규제와 강남ㆍ용인 등지의 신규 입주ㆍ분양 물량이 늘어난 것도 시세 하락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송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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