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화물연대 파업, 정부가 배후 세력이다.

녹색세상 2008. 6. 16. 16:56
 

고속도로에 화물차량이 없다.


고속도로에 화물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13일부터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가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뒤 컨테이너 등 화물 운송이 거의 중단되었다. 평소 남해고속도로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트럭이 즐비했는데, 서부산톨게이트를 빠져 나가기까지 거의 화물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덤프트럭만 간간이 보이고 대부분 승용차와 버스, 냉동차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낙동대교를 지나 부산항 감만부두까지 가려면 동서고가도로를 타면 된다. 동서고가도로를 타고 10여분 가량 달리니 바다가 보였다. 감만부두ㆍ신선대부두 안내판이 보였지만 고가도로에 화물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부두에는 컨테이너만 높게 쌓여 있었다. 지난 화물연대가 2003년 파업했을 때와 사뭇 다른 상황이다. 그때는 비조합원뿐만 아니라 조합원들도 파업 대오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까지 모두 운행을 멈추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 화물연대 부산동부지회는 신선대부두 앞에 천막을 설치해 놓고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그 맞은편에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 부산항에는 컨테이너가 5층까지 쌓여 있다.


감만부두에는 간간이 움직이는 트레일러가 보였다. 그 트레일러 앞에는 ‘군 지원차량’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또 운송회사에서 직접 빌린 차량들이 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장거리 운행은 하지 못하고 부두에서 가까운 거리만 이동할 뿐이었다. 이른바 환적화물을 담당하고 있다. 감만부두와 신선대부두 등에는 화물연대 조합원의 천막농성장이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다. 화물연대 부산지부에는 9개 지회가 있는데, 6곳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화물연대 가입 늘어…국민들 파업 지지 높아


화물연대 부산지부 사무실을 찾았다. 김영돈 중앙위원은 “파업에 들어간 뒤 전국에서 사흘 동안 새로 1300여명이 가입했다고 하며 부산만 300여명이 가입한 것으로 안다”면서 “각 지부…지회별로 가입원서를 갖고 아직 중앙에 보고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물연대가 부산항을 원천봉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그럴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비조합원들도 모두 차량을 멈춰버렸는데 원천봉쇄나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지금도 장치율이 100%를 넘은 부두가 있는데, 앞으로 이틀 내지 사흘 안에는 부산항 전체가 마비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파업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다 정부도 우리의 입장을 알고 있기에 극단적인 파국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감만부두 앞 천막농성장에는 화물연대 위ㆍ수탁지부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한 조합원은 “우리 사진 좀 찍어 주소. 우리가 바로 노숙자 다 됐다 아잉교”라고 익살을 떨었다. 그는 “돈을 벌어야 집에 들어갈 것 아니요”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이나 비조합원과 충돌은 없느냐”는 물음에 한 조합원은 “수시로 폭력행사 하지 말라고 방송하고 다닌다”면서 “비조합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폭력할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다른 조합원은 “기름값이 운송료를 추월하고 있으며, 장거리 차량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생계형 파업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막 한쪽 귀퉁이에는 라면과 음료수가 쌓여 있었다. 비조합원들이 먹을거리를 들고 찾아와 대신해서 잘 싸워 달라고 한다는 것. 원수복 씨는 “주변에 세워 놓은 차량들을 보면 알겠지만 화물연대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는 차량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전용희 화물연대 위ㆍ수탁지부 교육부장은 "운수 노동자들이 어렵게 된 것은 정부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화물차량은 화물을 갖고 있는 회사 소속이었다. 그 뒤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운송업무를 위탁하게 되었다는 것. 전 교육부장은 “기업에서 월급 받고 일하던 것을 위탁했는데, 정부가 방치해 온 것”이라며 “다단계를 없애야 한다고 십수년 전 부터 이야기를 했는데 정부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고, 심지어 2003년 파업 때도 한다고 해놓고는 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입이 닳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서 “그동안 정부가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며, 이번 파업은 정부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 조합원은 “대기업 화주들이 물류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을 안 받아도 괜찮다, 다단계만 없애고 표준요율제만 해도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조금을 주려면 우리뿐만 아니라 쉽게 말해 트럭 몰고 과일장사하는 사람들도 생계형이기에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서울, 부산 왕복 다니다 보면 밤잠 못 잘 때가 많다”면서 “노동 강도가 엄청나며, 운송료가 적다보니 한번이라도 더 뛰기 위해 졸음운전 해가면서 차량을 모는 것 아니냐. 화물차량의 교통사고 거의 대부분은 졸음 때문이며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해 아니냐”고 지적했다.

 

 

  ▲ 감만부두 정문에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고, 그 옆에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다.

 


신선대부두 앞 경찰병력 증강 배치

 

 

신선대부두 앞에도 화물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른 부두 앞보다 더 많은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화물연대 부산동부지회가 이날 낮 1시경 집회를 열자 맞은편에 경찰이 증강 배치되기도 했다. 천정태 화물연대 부산동부지회 홍보부장은 “운송료는 반드시 표준요율제를 해야 한다”면서 “다단계부터 근절해야 하는데, 운송료 몇 푼 받는 것도 중간에 몇 단계 거치면서 알선료를 떼이고 나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은 불과 60%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우리는 24시간 여기서 먹고 잔다”면서 “화물 차량 움직이는 것도 없는데 경찰병력을 배치해 과잉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에는 지난 12일부터 ‘화물연대 운송거부 대비 비상대책본부’가 구성되어 있다. 국토해양부와 부산시, 국군항만운영단, 철도공사, 부산항만공사 등 관련 기관들이 나와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상황실은 주말인 14일과 15일에도 가동되었으며, 관계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부산항은 컨테이너 보관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15일 낮 12시 현재 장치율이 100%를 넘어선 부두도 있다. 평상시 장치율은 70%다. 평상시 컨테이너는 3~4층으로 쌓여져 있는데, 15일부터는 5층까지 쌓고 있다. 부산항 중앙부두는 장치능력(2596TEU)보다 더 많은 2665TEU를 보여 102.7%를 기록하고 있다. 각 부두별 장치율을 보면 감만BICT는 94.7%, 감만BGCT는 95.4%, 신선대는 86.0%, 신감만은 94%, 우암은 87%, 4부두는 91.9%다.


부산항 신항은 같은 시각 현재 51.9%의 장치율을 보이고 있다. 정부 측은 부산항의 상황을 지켜본 뒤 배를 부산항신항으로 유도해 컨테이너를 내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국방부는 부산항에 군용 트레일러 55대를 지난 13일부터 배치해 환적화물 수송을 담당하고 있다. 국방부는 15일 오후 3시를 기해 27대를 추가로 배치했으나 국가 비상 사태나 긴급구호 물자 수송도 아닌데 법률적인 문제가 걸려 논란의 소지가 많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 심재찬 행정사무관은 “화물연대와 화주들이 협의를 하고 있으며, 정부 측은 운송사에 운송료 인상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면서 “부산항의 화물운송거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부산항 신항으로 배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윤성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