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노동자성ㆍ표준요율제 ‘숙제로’…불씨 잠복

녹색세상 2008. 6. 20. 04:48
 

운송료 보조만 부분수용, 기름값 급등하면 또 파업 가능성


“나 여기(화물연대) 그만두고 싶어요.”


화물연대 파업이 사실상 타결에 이른 19일 오후, 전화로 연결된 전국운수산업노조 화물연대 소속 한 간부는 장탄식을 금치 못했다. 운송료 19% 인상 외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화물연대 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식으로 협상안이 타결된 데 대한 실망의 표현이었다. 파업 과정에서 화물연대 쪽이 요구한 핵심 사항은 세 가지였다. 연대 조합원의 노동자 자격 인정, 표준요율제(구간별 최저 운임제) 올해 안 법제화와 함께, ‘유류비 절반 환급 하한선’을 현행 리터당 1800원에서 1600원으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유류비 환급은 한시적 미봉책인데다 국민 세부담을 늘리는 것이어서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사안이었다. 화물연대 쪽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솔직히 유류비 환급은 우리 좋자고 국민 세금을 쓰는 것이며 근본 대책이 안 된다”고 파업 초기부터 일찌감치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많은 비조합원과 일부 조합원이 원해 ‘대중 추수주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요구 사항으로 채택한 것이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비조합원들이 파업에 대거 동참한 게 어떤 면에선 부담 요인이기도 했던 셈이다. 더욱이 이 요구안은 관철시키지도 못했다. “1년간 1조원이라는 엄청난 재원이 들고, 버스 등 다른 곳을 감안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정부의 수용 불가론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표준요율제 도입, 노동자 자격 인정 같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집중하지 못함에 따라 비난은 비난대로 듣고 실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화물연대 집행부는 유류비 환급 하한선을 내리거나 운송료를 조금 올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노동자 자격을 인정받거나, 표준요율제를 조기에 시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비조합원뿐 아니라 상당수 조합원들 또한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원했다. 화물연대의 한 간부는 “이 때문에 제도 개선 요구를 하는 동시에 운송료 협상을 겸비하는 전술을 채택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한 “사업장별로 운송료가 타결돼 운송 거부 차량의 일부가 복귀할 가능성도 예견됐지만 20~30%쯤 복귀하는 것으로는 끄떡없을 것으로 분석했다”고 밝혀 상황 판단에서도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화물연대 집행부에서 노동자 자격 인정, 표준요율제 도입 같은 제도 개선과, 운송료 인상 방안을 어정쩡하게 겸비하는 전술이 옳은지에 대한 회의감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18일부터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개별 사업장별로 협상안이 속속 타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일 오전 들어 파업 가담자들의 복귀율이 15%를 넘어서자 화물연대 지도부는 다급해졌고, 운송료 인상이라는 성과 외에 별다른 실익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다. 박상현 화물연대 법규부장은 “전술에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다”라며 “따가운 비판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쪽이 운송료 인상이라는 미봉책 말고는 뾰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파업 재발의 불씨는 그대로 남겨두게 됐다. 올해 파업에서 드러났듯 비조합원 상당수까지 파업 대열에 동참하는 대규모 파업은 언제든 불거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겨레/송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