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룸사롱이 군사보호시설? 군추태 고발기자에 징역형

녹색세상 2008. 4. 28. 22:47
 

“이 판결이 앞으로 선례가 될까 염려스럽다. 군이 취재의 성역이 되고, 각종 정부부처가 방어막을 형성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부대 내에 잠입해 룸살롱 운영 실태를 취재한 이유로 군 재판부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은 김세의 ‘문화방송’ 기자의 말이다. 이어 김 기자는 “실제 고발 대상인 군을 상대로 취재한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잣대를 바탕으로 불공정한 판결을 내렸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난 24일 공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허위 신분증을 가지고 초소를 통과한 혐의(군형법상 초소침입죄)로 불구속 기소된 김 기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초병을 속이고 초소를 통과해 부대 내 유흥주점 실태를 몰래 취재하고 촬영했다. 다만 공익적 목적의 취재였다는 점을 고려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김 기자를 비롯한 언론계는 한 목소리로 "군의 잘못된 치부를 드러낸 기자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군 사법제도가 지휘관의 영향 아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부대 내 룸살롱 운영 실태 보도…그러나 신분증 허위 제시로 입건돼


지난 2007년 2월 6일, 김 기자는 MBC ‘9시 뉴스데스크’를 통해 ‘군부대에 룸살롱... 도우미까지 고용해 파문’이란 제목으로 군 수뇌부의 부적절한 처사를 보도했다. 이를 통해 군부대 내의 룸살롱에서 군 간부들이 여성 도우미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장면이 그대로 공개됐다. 김 기자의 보도가 나간 후, 군에서도 잘못을 인정하고 해당 룸살롱을 즉각 처분했다. 국방부는 보도 다음날인 작년 2월 7일 “접대부 출입금지를 포함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 절차가 문제가 됐다. 군 시설에 접근할 방법이 없었던 김 기자는 당시 공군 중위로 복무 중이던 대학 후배의 신분증을 빌려 부대 안으로 잠입했다. 이 때문에 김 기자는 작년 2월 허위신분증으로 군사시설에 무단 침입한 혐의로 형사입건 됐고, 결국에는 군사법원의 1심 재판에서 위와 같은 판결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군사법원의 판결에 대해 김 기자는 “파렴치한 행위로 선고 받은 게 아니니까 크게 걱정되지 않으며 감옥에 간다 해도 부끄러울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이번 사태가 너무 황당하고 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김 기자는 “군 검찰은 이 사건으로 나를 1년 넘게 괴롭혀 왔는데 군법원에 가니 속전속결이었다”며 “오후 2시에 공판을 시작해서, 2시 40분 휴정, 그리고 3시에 속행하고 바로 선고해 버렸는데 이는 완전히 ‘우리 괴롭힌 너 당해봐라’ 이런 심보 아닌가”라고 개탄했다. 또 김 기자는 “군 룸살롱은 17년째 이어지고 있었는데 보도 후에 폐지됐다”면서 “보도가 안 나갔다면 20~30년까지 쭉 이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력의 성역이 법이라는 명목 하에 보호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화방송 기자회와 한국기자협회도 잇달아 성명을 내고 “누가 봐도 분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재판 결과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문화방송 기자회는 25일 성명을 통해 “지난해 2월 군의 어이없는 행태를 고발한 보도국 김세의 기자에게 군은 또다시 어이없는 판결을 내렸다.”며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불가피할 경우 약간의 절차상 문제가 있더라도 정상을 참작해주는 것이 민간 법원의 일관된 판결태도”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도 성명을 통해 “현직 기자가 군사 법정에 서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면서 “이는 군사 정권 이래 유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것도 정당한 취재 활동을 죄로 삼았다”며 “군 시설은 국가 안보상 보호돼야 하나, 룸살롱마저 보호돼야 하는가? 이는 기자라면 당연히 국민에게 알리고 바로잡았어야 하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룸살롱이 보호 필요한 군사시설?…‘형식적 잣대로 일관한 판결’


이 판결에 대해 군 수석검찰관 출신의 최강욱 변호사는 “그야말로 황당한 판결”이라고 운을 뗀 뒤, “군 사법제도가 군 수뇌부 지휘관의 영향 아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군사시설보호법은 보안을 위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한 것인데 룸살롱이 군사기밀인가. 또 알려지면 위험한 시설인가”라고 반문한 뒤, “군의 부조리를 숨기기 위해 만든 법이 절대 아니"라고 일갈했다. 이어 "추악한 실태를 고발한 기자에게 이런 식의 판결을 내리는 것은 군의 비리를 숨기려는 비겁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최 변호사는 군 조직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군인들 스스로 자신들은 다른 국가기관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잘나가던 시절의 법, 안보 이데올로기가 아직까지 지배하고 있는 곳이 군이다, 사법권도 보유한 곳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군이 재판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런 식의 처벌을 하는 것은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라며 “만약에 정상적으로 사법독립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재판을 했다면 이런 결과는 안 나왔을 ”"이라고 꼬집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인 한상혁 변호사도 “취재 방식에 있어서 법을 위반했던 것은 사실이라 이 부분은 면하기 힘들 것”이라며 “하지만 절차를 밝아 정상적으로 취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불법적인 행태에 대한 보도였는데 형식적인 잣대로 들이댄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