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검증되지 않아…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학부모에게 “우리 학교 수준별 교육과정 할까요?” 물으면, 대부분 ‘좋다’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자기 아이가 낮은 수준의 학급에 배치되면, ‘왜 우리 아이가 열반이냐?’고 한다. 막연히 ‘수준별로 배우면 좋은 거지’라고 여겼거나, 자기 아이는 공부를 잘해서 우등반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얘가 왜 열등반이냐’라고 뒤늦게 항변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수준별 교육과정은 시작되었지 않았는가. 정부나 보수 세력은 이 측면에서 성공했다. ‘수준별’이라는 말을 사용한 덕분에,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우열반이라고 했으면 안 되었을텐데, 수준별이라고 칭하여 가능했다. 하지만 우열반이나 수준별이나 조삼모사다. 차별은 매한가지다.
▲ ‘학교자율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집회 포스터.(사진:우열반, 야자보충, 학교자율화 반대)
서울교육청, ‘우열반은 금하나 수준별 이동수업은 확대한다’
4월 24일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부의 학교자율화 조치를 받아 교육청 차원의 ‘학교자율화 세부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우열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수준별 이동수업 실시 교과를 수학 영어에서 다른 과목까지 확대
- 과목별 수준차가 아닌 총점에 의한 능력별 반(우열반) 편성은 교육 획일화 조장 및 교육 평등권 침해 등의 우려가 있어 금지
- 영어·수학으로 한정되어 있는 과목을 확대하는 등 수준별 이동수업을 활성화하여 학생별 맞춤형 수업 적극 유도
- 수준별 수업 대상 과목 및 수준의 세분화는 학교의 여건에 따라 단위 학교에서 자율 결정
우열반은 금지하나, 수준별 이동수업은 확대한다는 거다. 기존의 영어와 수학에서 다른 과목도 하도록 하고 수준도 보다 세분화하겠단다. 사회 상/중/하, 체육 상/중상/중하/하 뭐 이런 그림이다. 이를 두고, 주요 언론은 “서울시 교육청, 우열반 금지”라고 보도한다. 국민들 또한 언론의 보도를 보고 서울시교육청은 우열반을 하지 않는구나 생각할 것이다. 언론과 국민이 원숭이가 되고. 서울시 교육청은 승자가 되는 순간이다.
교육과정은 이미 ‘수준별’인데…
일단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수준별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뭘 배우고, 2학년 때는 뭘 배운다 식으로 되어 있다. 학생의 발달상황을 고려하여 짜여 져 있다. 물론 나이나 학년을 기준으로 하는 게 맞는 가 등이 논란꺼리이긴 한데, 그건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들 몫이다. 교육과정이 이미 수준별인데, 여기다 대고 ‘수준별’이라는 말을 또 쓴다. 일종의 ‘역전 앞’인데, 왜 그랬을까.
첫째, 수준별 교육과정이나 수준별 이동수업은 한 학년 안에서 학생을 나누겠다는 거다. 기존의 교육과정에서는 같은 학년이면 비슷한 걸 배웠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학생을 구분하여 다르게 가르치겠다는 거다.
둘째, ‘수준별’이라는 말에 대해 사람들은 좋게 생각한다. 마치 ‘자율화’라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있어보이게 말하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나쁘게 말하면 속이기 좋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고안했던 정부 측 사람들의 생각은 간단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가 섞여 있는데, 교사는 중간에 맞추어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는 지겹고, 공부를 아주 못하는 아이는 못 알아듣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지 말고,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가르치면 보다 효과적이고 교육적이지 않은가. 학교나 평준화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같은 문제의식이고 동일한 접근법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제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교육과정이고, 학교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게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의 수준별 이동수업이다. 수준별 교육과정은 수준에 따라 같은 학년의 학생을 나누는 거다. 여기서 수준이란 성적이고, 나누는 방식은 학급이나 분단의 구분이다. 이렇게 나누면, 한 학급이나 분단의 아이들은 성적이 비슷비슷하다. 그러니까 공부 잘하는 아이 따로 모으고, 못하는 아이 따로 모은 거다. 능력(성적)이 같은 학생들끼리 모은 거다.
이 원리에 따라 아이들을 나누는 방식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학생의 총점을 기준으로 줄을 쭉 세운 후 1등부터 35등까지는 1반, 그 다음 35등까지는 2반 하는 식이다. 학급을 성적에 따라 편성하는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형태다. 트랙킹(Tracking)이라고 한다.
둘째, 80명의 학생이 있는데, 학생의 총점을 기준으로 20명(상), 40명(중), 20명(하)로 나누는 방식이 있다. 밴딩(Banding)이라고 한다. 셋째, 학생의 총점이 아니라 개별 과목의 점수를 기준으로 학생을 나눈다. 이렇게 되면 과목별로 상/중/하 학급이 나온다. 셋팅(Setting)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한 학급 안에서 학생들의 집단을 나누는 거다. 한 학급 안에 이 분단은 우등 분단, 저 분단은 열등 분단하는 식이다. 학급 내 능력별 집단편성이라고 한다.
우열반은 밴딩이다. 학원에서 하는 유학반, 서울대반, 연고대반은 우열반이고 밴딩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셋팅이다. 하지만 원리는 같다. 셋팅은 과목별로 밴딩한 것, 즉 과목별로 우열반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열반과 수준별 이동수업은 오십보백보다. 아점이나 브런치나 그게 그거다. 뿐만 아니라 우열반과 비평준화도 같은 거다. 한 학년을 나누는가 아니면 한 학교 급을 나누는 가 라는 단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부 잘하면 일류 고등학교 못하면 삼류 고등학교 가는 방식과 우열반은 같은 거다. 마찬가지로 공부 잘하면 서울대, 못하면 지방 삼류대 가는 것도 동일한 방식이다. 그러니 수준별 이동수업에 찬성하면, 우열반이나 고교평준화 해체에도 찬성해야 한다. 평준화에 찬성하면서 정반대로 수준별 이동수업에 찬성하면, 일관된 입장이 아니다. 물론 인간은 일관되거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평소에는 ‘선생이 말이야’나 ‘철밥통들은 정신 차려야 해’라고 열심히 씹어대다가도 자기 아이가 선생님이나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는 게 오늘의 한국인이다. 따라서 고교평준화에 찬성하면서도, 수준별 이동수업이나 우열반에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똑같은 것을 언제는 찬성했다가 언제는 반대하고 있음을 알고는 있어야 한다.
수준별 이동수업이 효과 있을까?
수준별 이동수업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은 ‘수준별로 가르치면 좋겠네’라는 생각 때문이다. 당연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의외로 효과가 검증된 경우는 별로 없다. 성적만 놓고 보면, 상위 5%만 효과가 있다. 나머지는 큰 차이가 없거나 떨어진다. 당연하다. 당신이 교사라면, 우등반과 열등반 중에서 어느 반을 가르치고 싶겠는가. 당신이 교사라면 열등반에 가서 뭘 가르치겠는가. 아니 가르치고 싶은가. 그리고 열등반에 있는 학생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못하는 아이에게 기초를 가르친다는 게 그럴싸해 보이지만, 학습이란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도 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작스런 탈바꿈도 있다. 유약한 주몽이 수준이 낮다고 해모수에게 고차원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주몽은 어떻게 되었을까. 따라서 우열반이나 수준별 이동수업은 일종의 차별이다.
특히, 한국은 수준별로 다르게 가르치지만 시험은 같은 걸 본다. 우등반 학생들은 고차원적인 것을 배우고 열등반 학생들은 기초를 배우는데, 시험은 같다. 그러면 누가 시험을 잘 보나. 수준별 이동수업이나 평준화나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효과 또한 같다. 평준화가 비평준화보다 못하다는 소위 ‘하향평준화’ 역시 검증된 바 없다. 간혹 평준화가 더 낫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향평준화’라는 말은 일종의 유언비어에 가깝다. OECD의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계속 1위를 한 핀란드도 극단적인 평준화 체제이지 않은가. 다만, 비평준화는 상위 5%나 10%에게 좋은 효과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효과가 별로이나 상위 5%에게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상위계층은 우열반이나 수준별 이동수업을 직감적으로 원한다. 평준화 해체를 잘 사는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과 같다. 귀한 아이가 미천한 것들과 한 교실에 있는 걸 볼 수 없다는 심리라고나 할까.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피해 다른 학교로 아이를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하면 사교육비는 당연히 증가
어른들은 우열반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학교 밖에 사교육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밖의 사교육이 학교를 잡아먹을 기세다. 따라서 교과서만 열심히 하면 안 된다. 우등반에 남기 위해 또는 열등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교육은 필수다. 물론 돈이야, 돈 벌어주는 기계인 부모가 알아서 할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밴딩(우열반)보다 셋팅(수준별 이동수업)이 가지 수가 많다는 데 있다. 우열반은 총점으로 1부 리고, 2부 리그, 3부 리그 형태인데, 수준별 이동수업은 각 과목별로 상/중/하가 있어서 8개 과목이면 리그 수가 24개나 된다. 그러니까 우등반 ‘입시’가 많아진다. 따라서 아무래도 사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 여기에 지금의 사교육도 논술학원, 어학원 하는 식으로 전문화되어 있으니,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 이를 위해 전용 자동차도 필수다. 부모가 맞벌이면 한 사람은 일을 관두게 해야 한다.
정말 맞춤형 수업을 원한다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줘야 한다. 출산율을 저하되어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니, 조금만 더 학교나 학급을 만들면 된다. 그래서 교사가 학생 하나하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업은 관계다. 강의식 수업은 나쁜 것이고 토론식 수업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다. 많은 학생들에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데에는 강의식이 보다 효과적이고, 학생을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는 토론식이 보다 효과적일 뿐이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수업방식이란 없다. 인간의 역사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만약 만병통치약 수업방식이 있었으면 벌써 있었을 것이다. 어떤 수업방식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다. 학생과의 만남에서 교사의 말, 손 동작, 움직임, 눈빛, 귀 기울이기, 믿음, 기대, 준비가 어떠냐에 따라 수업이 달라진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다. 학원의 교습장에 몇 명이 앉아있는지 가서 보라. 그리고 학교로 가서 한 교실에 몇 명인지 보자. 아니면 교육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교수들이 있으면, 박사 과정 학생이 몇 명인지 물어보라. 동시에 학생들은 수준이 조금 다르더라도 함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습이란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도 있지만, 서로서로 배우는 것도 만만치 않다. 못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에게 물어보면서 배우고, 잘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에게 대답해주면서 배운다. 따라서 학생들을 나누는 것보다 학생들끼리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게 더 낫다. 물론 뒤쳐지는 아이는 당연히 있다. 그냥 섞어놓든,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놓든, 못하는 아이들만 모아놓든 간에 신기하게도 다시 상/중/하로 나뉜다. 이럴 때는 뒤쳐지는 아이들을 위한 우회도로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의미의 보충수업이 있어야 한다. 아이 잘 기르는 법이나 가족의 행복 비결 등을 강의하거나 전파하는 그 많은 전문가들이 항상 말하는 게 있다. 비교하지 말란다. 남편을 다른 남편과 비교하지 말고, 아이를 옆 집 아이와 비교하지 말란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국의 수백만 학생들을 시험으로 비교해서 우열반으로 편성하려고 한다. 또 차별하지 말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차별하지 말란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국의 수백만 아이들을 우열반이나 고교 다양화 300 따위로 나누어 차별하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꼭 이럴 때 전문가들은 없다. TV나 각종 강연이나 돈 되는 곳에 넘쳐나던 교육학자와 심리학자ㆍ아동학자들이 꼭 이럴 때만 되면 사라지고 없다. 그러니 믿을 건 자신뿐이다. (레디앙)
야자보충, 학교자율화반대 까페 http://cafe.naver.com/no2mbedu.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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