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 수급권자로 선정이 되면 매월 생활지원비가 나옵니다. 4월까지는 난방비를 지원하는데 포함하면 20만원이 조금 넘죠. 제가 도와 드린 분의 경우 7월 중순까지는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기 그지없습니다. 주거 문제 걱정이 없고 쌀과 반찬 걱정 하지 않으면 그 돈으로 겨우 생활은 할 수 있겠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해 개인의 금융정보 제공 동의까지 받아서 모든 재산 조사를 하니 다 드러납니다.
남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거나 집을 이전해 놓지 않는 한 속일 재주는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속일 경우 금융실명제 위반에다 부동산관계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니 겨우 몇 푼 받자고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관공서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현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게을러 일 안 하고 놀고먹으려 한다’면서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너무 가혹하다고 저는 봅니다.
대도시에서 20만원으로 살아가라는 것은 ‘너, 얼른 여기에서 나가라’고 내모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산재사고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어 무리한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데 그렇다고 하나 뿐인 목숨을 끊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예전처럼 주위에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던 인심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 세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기에 자기 주머니를 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은 붙들고 있고 보자는 게 사람들의 정서입니다.
없는 것 보다야 낫지만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게 맞고, 그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국민의 생활을 지키지 않는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죠. 의료비도 본인부담금 일부 지원이지 무료 진료 혜택을 주는 게 아닙니다. 장애등급이 높을 경우에는 의료비 전액을 지원해 주지만 ‘근로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게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입장입니다.
일할 처지가 못 되니 그나마 최소한의 생활을 하라고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을 하고도 ‘너, 얼른 여기서 벗어나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정부는 돈 쌓아 놓고 있느냐’고 항변할지 모르나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라면 충분히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돈이 없어 할 형편이 못 되는 게 아니라 할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게 맞죠.
농촌지역에 지원금 명목으로 정해 놓은 토목업자들 배 불리는 돈과 연말이면 예산이 남아 멀쩡한 인도블록 걷어내고 도로 경계석 바꾼 지 몇 년 안 되는 것 교체할 비용을 지역주민들에게 돌리면 현 상태 하에서도 지금보다는 나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군비 감축과 같은 거창한 것 내걸지 않아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그게 안 될까요?
일선 공무원들을 나무랄 일이 아니라 생색내기에 정신없는 단체장들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가난한 주민들은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지 그리 반기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난의 벼랑 끝에 내 몰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빈곤한 이웃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쟁 사회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결코 별종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난방비 포함해 2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는지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그나마 60~70여만원 정도 수입이 되는 공공근로를 하면 기초생활수급권자격을 내 놓아야 합니다. 이게 국민실질소득 2만불이 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복지의 현주소입니다. 우리사회는 급격히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되어야 부자들도 불안하지 않고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지 선택 사항일 수 없습니다.
살기 힘들어 나락에 빠져든 사람들이 선택할 길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생계형 범죄와 같은 극한 선택을 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음을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합니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사회안전망마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더 축소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국민소득 2만불의 대한민국이 자살률 세계 1위인데 얼마나 더 많이 죽어 나가야 대책을 세울지 갑갑하기만 합니다. 함께 머리 맞대어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웃을 생각하는 포근한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게 저만의 바람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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