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살아가기-1

녹색세상 2008. 4. 16. 12:18
 

긴급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니 상담 좀 해 주라는 연락이 왔다. 긴급 지원이란 게 마른 논에 물 뿌리는 것과 같아 별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단 돈 천원이 아쉬운 사람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되기도 한다. 만났더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잘 생긴 얼굴에다 귀티가 흐르는 사람이다.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 아는 척 하려 했으나 ‘피해 달라’는 표정이라 그냥 넘어갔다. 어려운데다 채무 관계가 있어  전세금과 가재도구마저 압류 당한 아주 딱한 처지였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돈도 없고 먹을 게 없어 8일을 그냥 굶었다고 한다. ‘사흘 굶어 남의 집 안 넘을 사람없다’고 했는데 일주일 넘게 단식 투쟁도 아닌데 물만 먹고도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았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 정부는 모든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고 책임져야 한다.


일단 ‘긴급구호금’ 신청을 하고 냉방에 잘 수는 없으니 도시가스 차단부터 막고 쌀과 반찬을 구하도록 주선을 했다. ‘절차상 시간이 걸린다’는 담당 공무원의 말에 ‘굶어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갈 처지인데 무슨 절차가 필요하냐. 조치부터 취하고 보고하는 게 이 제도 아니냐. 사고라고 생기면 당신 책임지라’며 다그쳤다. 담당공무원의 문책을 묻지 않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관료조직의 경직성이 나타나 더 화가 났다. 당장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죽기 싫다 긴급 지원하라’는 글을 적어 구청장실로 들어갔다. 비서실장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곳곳에 전화를 하며 상황을 파악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절차를 밟아야 하니 몇 일 걸리고 돈이 없다던 게 어디서 튀어 나왔다. 도시가스 요금 일부는 내 차단을 미루어 놓았다. 단식 후 음식 잘못 먹으면 큰 일 나니 회복 요령에 대해 일러 주면서 기억을 더듬었더니 청년시절 함께 했던 동지였다. 참 인정 많고 막걸리 한잔 하면 늘 먼저 지갑을 열곤 하던 사람이었다. 생활인으로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늘 빚진 마음을 갖고 현장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운 열렬 후원자였다.


그러던 사람이 풍비박산이 나서 팔일을 굶는 지경까지 왔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들은 어른들께 맡겨 놓고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고 발버둥을 쳤건만 빈곤의 수렁으로 밀려들어 가고 말았다. 자식들 얘기가 나오자 이 중년의 사내는 피눈물을 쏟았다. 중년의 사내 둘이서 같이 그냥 울기만 했다. 살기 어려워지자 그렇게 죽고 못 산다던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궁지에 몰린 그의 삶은 백척간두에 처했으니 그 속이 성하다면 이상할 것이다. 하필이면 내 주머니가 비었을 때 이런 일이 생겨 도와주지 못해 더 속이 상했다. 비록 쥐꼬리만한 지원금이지만 받아서 우선 몸이라도 추슬러 건설현장의 뒷일이라도 하면서 ‘끝까지 살아남자’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175센티미터가 넘는 훤칠한 키에 체격도 좋았는데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몸이 완전히 골았다. 그 잘 생기고 소탈한 웃음의 얼굴에 사십대 후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보였다. 아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니 다행히 건강에 이상은 없다고 한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굶는 국민이 있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민중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상한 몸 추스르려면 최소한 서너 달은 몸보신도 하고 재활 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꿈도 못 꿀 처지다. “에이시팔, 이게 무슨 놈의 국가”인지 정말 열 받는다. 원래 강골이라 몇 일 죽으로 회복식을 했더니 얼굴이 금세 좋아지고 예전처럼 농담도 하곤 한다. 하루빨리 몸이 좋아져 가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이 사내의 몸이 좋아지면 ‘살 대책 세우라’고 구청장실 점거하러 다시 한 번 갈 생각이다. ‘죽기 싫으니 살려내라’고 고함이라고 질러야 되지 가만있으면 완전 함흥차사다. ‘2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너희들이 살아봐라’고 집어 던지고 드러누워야겠다. ‘아파서 노동하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바탕으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인정해 주고도 ‘근로능력’이 있다며 대도시 한 복판에서 그 돈으로 살아가라는 게 대한민국 정부가 하는 복지정책 현실이다. 집세 걱정 없고 먹는 것 고민하지 않고, 병원비 안 들면 버텨보겠지만 ‘그 돈으로 살아라’는 건 간접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을 죽이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네 처지가 서글프기 그지없다. 

 

추가: 제가 도와 드린 분은 심한 근골격계질환으로 힘든 노동을 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갈수록 근로복지공단에서 재요양 승인을 내 주지 않아 마음 놓고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모두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걸핏하면 법적으로 하라고 하는데 재판이란 게 서너달은 지나야 판사 얼굴 한 번 볼 정도로 기간이 길어 그 기간 동안 견딜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죠. 이제 기초생활 수급권자로 지정 되었으니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행정소송에 들어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