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목련이 활짝 피고 벚꽃이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인 삭막한 도심에서도 자태를 뽐내더니 얼마 전 내린 비로 지고 있군요. 가로수의 싹이 돋아다는 것을 보니 봄의 절정이 가까워 오는 것 같습니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 옛말처럼 갈수록 힘들어져가는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삶의 주름을 더 깊게 해 봄날임에도 마음이 밝지 않군요. 인간의 욕심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건드리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마구 이용한 자동차 매연과 대량 소비로 인해 늘어만 가는 공장 굴뚝 연기로 급격하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변한 기상이변은 지금까지의 모든 천문기상학 이론을 동원해도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하니 인간의 욕심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 셈이죠.
지난 시절 ‘공해ㆍ환경’을 말하면 ‘개발을 막는 불순한 인간’으로 내몰아 여지없이 감옥으로 보내곤 했는데 그들이야말로 선지자요 시대의 예언자였음을 이제야 알고 있죠. 그래도 남은 똥고집이 있어 그런지 시원하게 인정을 하지 않더군요. ‘입으로 시인하는 게 믿음의 시작’이라고 그렇게 떠들면서도 자신의 지난 과오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해 옆에서 보기 민망할 때가 많답니다. 한국교회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죠.
통일교가 정치자금 지원을 통한 간접지배 방식에서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으로 전술을 바꾼 지 언제인데 이제야 무슨 큰 난리라도 난양 야단이니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그렇게 거품 무는 양반들이 늘 뒷북치는 소리만 하고 있어 갑갑하네요. 군사독재정권이 사이비 종교와 결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당연한 귀결’이라고 예언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칠 때 ‘교회에 침투한 좌익’이라고 매도했으니 자업자득임에 분명하죠. ‘통일교가 나왔으니 기독교당이 나와서 막아야 한다’는 단순하다 못해 무식한 논리를 이번 4.9 총선에도 들먹였는데 너무 황당하더군요. 지난 17대 총선 때 ‘너희는 안 된다’고 선거 결과로 심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더 갑갑한 노릇이죠. 기독교인들에게 조차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게 증명되었으니 개망신 당하는 짓 하지 말고 조용히 계시라는 부탁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 많이 하고 하느님 은사 듬뿍 받은 양반들이 세상 흐름의 기본도 모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종교가 권력과 밀착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 왜 통일교와 같은 집단에게 대항해야 하는 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을 하지 않으면서 선거 때만 이런 말을 하니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억지 부리지 마라’고 할 수 밖에 없죠. 그렇습니다,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길과 답이 보이는 무슨 대단한 것인 양 ‘특수성’이란 말로 포장해 특별 논리를 내세우니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인간들의 삶과 직결한 문제에 대해 그래도 시원한 답을 내어 놓는다는 경제학은 ‘특별한 이론’을 별로 쳐 주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에 고루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설명을 좋아하죠.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고 저는 봅니다. 이 땅 민중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아성을 쌓고 세상과 동떨어져 ‘선민의식’에 젖어있는 기독교인이 이상적인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고 우기는 한 그 어떤 것으로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봅니다.
▲ 81개 평신도단체 대표들이 평화통일가정당 국회장악을 저지하기 위해 3월 31일 오후 2시 한국기독교회관에서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렇지만 박성수 장로의 이랜드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기독교가 이렇게도 번성한 한국교회에서 신학교의 일반론을 말하면 별종이 되는 풍토가 계속되고, 그래도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는 유럽의 인문ㆍ사회학의 지성들이 내 놓은 신학조차 이단시 하는 풍토 하에서는 얼마 전 구속된 JMS의 정명석보다 더한 악질이 나올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감 갑니다. 기독교 2천의 역사 가운데 이런 엉터리 장로교회와 개혁신앙도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굳이 큰 지식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문선명ㆍ신천지 집단에게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읽은 성서 몇 장의 편협하기 그지없는 잣대로 일방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 결코 사랑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19세기 산물인 자유주의 신학이 아직도 문제가 되는 설교가 판을 치고, 그런 무지가 무식이 아닌 대단히 끈질긴 것으로 받아들이는 풍토가 계속되는 한 보편적인 상식의 신앙은 설 자리가 없죠. 보편적인 상식을 짓밟은 대가는 부메랑이 되어 ‘고립과 폐쇄’라는 선물로 반드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 형, 이번 선거를 대하는 한국교회의 행태를 보면서 21세기에 이 땅 민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알겠더군요.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라’는 예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한 수 지도’ 하려고 덤비는 오만과 교만이 가득 차 있는 아주 비성서적인 모습이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커녕 읽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저돌적인 무식함 앞에 과연 어떤 앞날이 있을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죠.
이명박 정부의 탄생은 자본에게만 유리한 ‘광란의 질주’를 알리는 전주곡입니다. 전과 17범을 ‘장로대통령’이라고 좋아하니 ‘미친시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미국에서 한글로 박사학위 받은 목사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가 있고, 평생 고생 안 해 본 재벌집 막내아들 정몽준을 영입한 그들에게 ‘국민을 섬기는 자세’를 기대한다는 게 어리석은 일이죠. 미치광이가 대형트럭을 몰고 질주하는 이 시대에 끌어 내릴 용기가 없다면 가만있기라도 하면 될 텐데 망발을 늘어놓으니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죠. 제발 상식적인 선에서 말하고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본과 투쟁하라’고 하지 않을 테니 거품 물고 찬양하지는 말라는 부탁은 꼭 해야겠습니다. 이게 신앙생활 30년 넘게 한 진보정당 당원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김 형, 이 부탁만은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봄날에 봄기운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살아가기-1 (0) | 2008.04.16 |
---|---|
국회의원선거 후유증을 극복하자 (0) | 2008.04.15 |
잦아진 김민웅의 훈수 (0) | 2008.04.13 |
선거 뒤, 무엇을 할 것인가? (0) | 2008.04.03 |
한미FTA 협상의 주역 김현종, 경제저격수는 아닌지? (0) | 2008.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