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선거 뒤, 무엇을 할 것인가?

녹색세상 2008. 4. 3. 17:45
 

선거가 코앞인데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몇 명 안 되는 인력으로 주어진 일정 소하 하느라 정신없이 전쟁 치르는 선거본부의 동지들이 들으면 몰매 맞을 소리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신도 안 나고 장사 안 된다던 연말 대선 때 보다 더 한 것 같다. 민주노동당과 갈라선 후 더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여건이기도 하다. 연말에 언 손 녹여가며 움직인 것은 봄날에 있을 ‘총선장사’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데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으니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이 선거를 치르지 않을 수는 없으나 선거로 인해 동력이 소진되어 총선 후 ‘본격적인 재창당’의 기운이 남아 있을지 걱정이다. 형편에 맞게 선거를 해야 할 것 같다.

 

  ▲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세대 간의 고통분담을 위한 대화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원망스럽기도 하다. 좀 힘들더라고 견뎠더라면 험한 꼴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때 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차는 지나가 버린 상태라 뒷북치는 꼴이다. 그러나 선거 후 이렇게 된 경위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고 서로가 ‘밀월을 즐긴’ 과정에 대한 반성과 함께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은 감정이나 보복이 아니라 새로이 도약하기 위한 절차요 과정이기에 꼭 필요하다. 잠시 불편하다고 해서 과정을 생략하는 순간 나중에 큰 홍역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세상에 공짜란 절대 없는 법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과연 몇 석이나 차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지역에 3~4석, 비례후보 3~4명 당선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희망사항 일 뿐 ‘거의 바닥’일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서로의 정책 차이도 별로 없고 우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내세울 게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주사파’를 들먹이는 것은 좀 그렇다. 정당이니 정책으로 평가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러지 못하니 이만저만 갑갑한 노릇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 온 대중사업을 선거를 통해 평가받아야 하는데 선거 코 앞에 갈라졌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뒤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점에 두어야할 게 ‘20대를 유혹’하기 위한 사업이다. 당원 연령층은 물론이려니와 활동가들 역시 고령화로 내닫고 있다. 자민계열은 그나마 대학생들이라도 잡고 있지만 전부가 한 마디씩 할 정도로 똑똑한 평등계열은 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태로 간다면 10년 후 우리들의 모습이 어떨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위 5%를 제외한 나머지가 갈 곳이라곤 비정규직뿐인 20대를 붙잡아야 한다.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나마 비정규직의 자리에도 가지 못한 미취업자들은 비록 약하지만, 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각 조직과 부문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피’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들의 손을 잡고 20대의 진정한 벗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국사회 미래의 담론에 대한 지배력이 달려 있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자본의 구매력에 근거한 회유와 상업주의 언론의 열광적인 애국주의에 의한 동원력이 강할 것인지, 아니면 진보정당을 비롯한 대척점에 서 있는 세력이 내미는 협조의 손이 더 강할 것인가가 이 사회 흐름의 분기점을 형성할 것이다.

 

  ▲살인적인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기성세대도 살 길이 없다. (사진:오마이뉴스)


최소한의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승자독식’의 살벌한 세상, 자본의 무한착취만 존재하는 사회에 젊은이들을 내팽개친 기성세대로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손을 내밀어 붙잡아야 하는 게 도리다. 이들에게 진보는 자처하는 집단이 ‘꼰대’가 되어 ‘너희들은 고생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틀린 말이고, ‘너희들은 민주주의를 모른다’는 말도 결코 타당하지 않다. 젊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부터 ‘협력의 양상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갈림길이 된다. 진보정당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함께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20대에게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치열했던 무용담을 들려주는 ‘꼰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의 처지와 형편을 이해하고 새로운 방안을 찾는 일에 나설 것인가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결정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변수이가 남아있는 마지막 가능성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의 20대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적절한 해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눈을 조금 크게 뜨고 한국 경제를 살펴보면 이렇게 드러난 문제는 현재 ‘승자독식’의 경제구조가 전환의 분기점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마나 숨통이 돌아가는 유럽형으로 갈 것인지, 숨 막히는 중남미형으로 갈 것인지 갈림길에 놓여 있기에 진보의 역할이 더 필요하고 소중하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정책과 대한을 제시해 그냥 ‘팬클럽’만 만들 것인지 진보정당으로서 20대들의 동지가 되는 적극적인 노력을 할 것인지는 전적인 우리들의 몫이다. 선서 후 이 부분에 대해 당의 사활을 걸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날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살고 진보정당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