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우리들의 청년, 88만원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녹색세상 2008. 3. 18. 15:12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 20대들 눈동자가 흐리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곤 한다.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의욕이 없어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해 ‘마짱’뜬 우리 세대들의 청년시절과는 너무 달라 갑갑하기 그지없다. 21세기 초 남한 땅에서 20대로 살아가는 청년ㆍ학생들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학습 부족과 성찰이 없음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결과만 갖고 탓 했을 뿐 이해하거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지금처럼 ‘성인아이’가 된 이유를 ‘편하게 자란 탓’으로만 돌렸으니 영락없는 ‘꼰대’다. 갈수록 치솟는 사교육비와 살인적인 등록금은 20대들의 문제이자 부모세대인 우리들의 문제임에도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갓 스물이 넘은 자식이 감옥 갔을 때 부모님들은 치열하게 싸웠으나 등록금 문제로 머리만 싸맬 뿐 그 흔한 총장실 점거 농성조차 하지 않고 뒤에서 욕만 해댄 비겁한 짓을 해왔다. 

 

▲2월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전국대학생 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1년 1천만원 등록금 시대’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교육재정 기반 마련’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아침저녁으로 모셔다 주고 모시고 온 탓에 스스로 해 본 것이라곤 전혀 없는 20대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억지일 뿐이다. 다 큰 자식을 감기 걸렸다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판에 성숙할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치열하다 못해 살인적인 사교육시장에 내몰려 주입식 교육으로 오직 ‘승리의 고지’를 향해 간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고민하고 해본 것이 없으니, 영리하다 못해 영악할 수밖에 없고 비판적인 안목을 기를 틈이 없는 게 현실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이지만 비싼 등록금 탓에 아르바이트란 착취 노동에 시달리고, 졸업해도 기다리는 건 겨우 비정규직뿐인 그들에게 완전 고용에 가까웠던 예전 우리 세대의 잣대를 대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헌법에서 국민의 기본권으로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노동을 해야 개인의 삶을 영위하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 지금의 이 땅 20대들에게는 그런 권리마저 없다. 과히 압사직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도 한 청년의 권유로 ‘88만원 세대’를 읽고 나니 햄버거집 아르바이트로 내몰려 자신들의 미래를 살해당하는 젊은이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상태를 방치한다면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세대 간 경쟁에서 극소수를 제외한 약자인 20대는 착취당할 수밖에 없고, 착취당한 그들은 다음 세대를 짓밟는 악순환인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사회 앞날은 암울하기 그지없고 우리 세대의 노후 또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총체적으로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책 안 읽고 세상을 고민하지 않는 것’만 탓해왔다. 그런 나에게 그들을 이해하고 세대 간 불균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한 연대의 긴박성과 구체적인 그림을 깨닫게 했으니 천만다행이다. 자칫했으면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될 뻔 했는데 벗어날 수 있어 운 좋은 셈이다. 이를 계기로 젊은 세대가 노동권을 되찾는 무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함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