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부활절의 의미

녹색세상 2008. 3. 22. 17:47
 

2천여년 전 이 땅에 왔던 예수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총독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그의 부활을 둘러싸고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독교의 비신화화’를 말하는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예수 부활사건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실존적인 고백”이라며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돌리려 하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기록했다는 4복음서가 신약성서 중에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예수의 직계 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뛰어난 활동을 했다고 하는 바울서신이 먼저 기록한 문서다. 그 후 제자들이 바울문서를 참고로 해서 기록했다는 게 신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영등포산업선교회로 더 잘 알려진 ‘성문밖 교회’ 주변은 공장이 아닌 주택가로 변했다.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찾지 못하던 시절 피난처가 되고 함께하는 이웃이었다.

 

지금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며 엄청난 폭력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본다. 성서 어디에도 그런 구절이 없다. 성서가 하느님에게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 다양한 지표 가운데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 구절도 더하고 빼면 안 된다’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억지를 부리는 목사들이 많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이런 무식을 향해 불후의 명작 ‘역사와 해석’ 서문에 “성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서가 이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독선과 아집에 빠진다”고 주의를 했다. 자신의 신앙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면 독선에 빠질 우려가 매우 높고 그런 신앙을 우리는 ‘광신’이라고 한다. 바울은 ‘광신에 빠지라’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예수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약한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신학교에서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목회 현장에서는 ‘신학 없는 목회’를 하고 있다. 신학을 반납해 버렸으니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믿음없다’며 자기 마음대로 정죄하는 폭력과 무식한 짓을 서슴치 않는다. 그것도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서. 이스라엘 목동들이 전한 ‘예수의 탄생신화’와 함께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부활 사건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하는가이다. 성서 그대로 전부 인정한다 해도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고난과 죽음 없는 부활의 영광을 팔아먹는 짓은 하느님을 빙자한 사기다. 기독교는 고난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성찰하는 종교지 축복을 파는 무당 푸닥꺼리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