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유인촌, 악역 맡은 초라한 배우

녹색세상 2008. 3. 21. 00:02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게 됐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세등등하게 ‘노 정권 사람들’ 축출에 앞장섰던 그였지만, 이제는 거친 퇴진론으로 되레 궁지에 몰렸다. 노 정권 사람들의 퇴진을 주장하며 앞장서 바람을 잡았던 조중동까지 등을 돌렸다. 거칠고 무리한 유인촌 장관의 퇴진 압박이 관료 출신 등 엉뚱한 사람들만 잡고 있다며 그 책임을 유 장관에게 일제히 돌리고 있다. 어찌 보면 유 장관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다. 다양한 빛깔의 공존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 문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 ‘코드’와 ‘색깔’을 내세워 반문화적인 폭력을 휘둘렀으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일국의 문화를 관장하는 수장으로서 유인촌 장관은 이미 지도력을 상실했다. 

 

 

▲악역을 자청하면서 졸지에 ‘문화계엄사령관이 된 유인촌 문화부 장관


       스스로 새긴 주홍 글씨, 어디 하소연하나


그에겐 가혹할지 모르겠지만 ‘권력의 나팔수’, ‘문화계엄사령관’이란 낙인은 이제 지울 수 없는 그의 주홍글씨가 됐다. 그런 그가 국민의 마음을 아우르고, 국민의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할 제대로 된 문화 정책을 펴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는 언론정책의 주무부처인 문화부 장관으로서도 처음부터 실패의 길로 들어섰다. 언론정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문화와 언론 정책을 문화부에서 같이 관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와 언론은 ‘다양성’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쌍생아다. 문화가 그렇듯이 언론 정책 또한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으뜸의 목표이다.


 그런데 유 장관은 “코드가 맞지 않으면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식의 언어폭력을 거침없이 행사했다.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여론의 다양성이라는 언론 정책의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이해나 있는지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런 그가 앞으로 어떻게 표현의 자유와 여론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언론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이야기할지 의문이다. 아무리 배우 출신의 유 장관이라지만 이런 ‘악역’은 처음부터 맡지 말았어야 했다. 좋은 배우의 덕목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잘 맞는 작품과 역할을 선정할 수 있는 안목이다. 아무리 연기자와 배우로서 자질이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작품과 배역 선정에서 실패한 연기자는 결코 탁월한 연기자가 될 수 없다. 그가 문화부장관이라는 배역을 맡기로 한 이상 그는 이번과 같은 '악역'은 절대 맡지 말았어야 했다. 그나마 그 악역조차 참으로 초라한 몰골이 되고 말았다. 불행히도 그에게 건네진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최악이었다. 그의 배역 역할에 따라, 관객의 호응에 따라 그 이야기가 달리 쓰이기도 하는 상황극일 수 있음을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극적 반전? 끝까지 악역…어떻게 소화할까


시나리오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의 악역에 잠시나마 환호했던 관객들조차 그에게 비난과 야유의 돌팔매를 던지고 있다. 당초 그에게 주어졌던 배역을 되찾기에는,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는지 모른다. 어지간한 배우라면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 이제 서막도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퇴장 이야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반전의 묘미라는 것도 있지 않느냐는 항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볼품없는 악역 연기로 시작해 갈채를 받고 끝내자면 관객들을 감동시킬 극적 반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폭력적 언사로 상처받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른 길도 있다. 끝까지 주어진 거친 악역의 역할을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길이다. 파탄적 결말도 인상 깊은 작품으로 남을 수는 있겠다. ‘관객모독’이라는 작품도 있지 않았던가. 배우 유인촌 장관이 그 배역을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하다. (오마이뉴스/백병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