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이라는 배우가 있었다. 예전에는 연기능력도 뛰어나고 대인관계도 원만한 이 땅의 연예인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고,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해 국민적 인지도도 높았다. 예상했던 대로 그가 장관이 되었다. 평소에 합리적인 언행과 탈이념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여서 문화예술계에서도 기대를 가졌다. 그런 그가 이명박 정부 출범 벽두부터 환상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 ‘좌파가 장악한’ 문화예술계의 ‘숙청활극’에 주인공으로 ‘문화계엄사령관’을 자임하며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계엄사령관’을 자임하며 용감하게 ‘좌파문화인사’ 숙청에 들어간 유인촌 문화부장관.
2008년 3월 한반도에는 ‘이명박 감독, 유인촌 연출, 유인촌 등장’의 기상천외한 연극이 상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수백만의 홍위병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색깔론의 공세를 펴고 있는 복면 벗은 검객이다. 그가 보기에는, 민예총을 중심으로 하는 좌파 예술가들이 지난 10년간 한국의 문화예술을 좌지우지했다. 천억이 넘는 문화예술위원회의 기금도 민예총이 특혜를 누렸고, 문화부도 민예총이 장악했으며, 문화예술 정책은 대부분 민예총의 수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통계수치를 점검해 보면 오히려 반대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므로 부디 유 장관께서는 구체적인 통계와 자료를 갖고 말해 줄 것을 요청한다. 사실 지난 10년간 민예총은 불이익과 억압을 받지 않았을 뿐, 편파적인 지원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민예총이 걸어온 고난과 예술적 치열성으로 보면 그 정도의 객관적 지원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치 민예총이 문화예술 전반에서 당파적 헤게모니를 행사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문화예술을 헤게모니의 투쟁현장으로 보는 그의 패권적 세계관을 대변한다.
유 장관의 발언이 충성용인지 선거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일국의 문화부 장관이 문화적 발상을 포기하고 권력의 첨병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 모두가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더 가공할 사실은 그가 우파 정권이 들어섰으니 좌파는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는 수신양명의 도리론까지 동원해 문화부 산하기관 단체장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 장관은 실용주의 노선과는 반대로 예술계를 좌파와 우파로 구분하고 우파 예술계를 대변하고 있는데 이 태도가 과연 장관으로서 올바른 것인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우파 언론과 우파 예술가들은 예총과 민예총의 총 지원 액수의 배분을 무시하고 ‘민예총 지원금 전년 대비 몇 퍼센트 증가’라는 식으로 통계를 왜곡했다. 그리고 우파 정치가들과 우파 예술가들, 특히 권력 지향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독재를 거부하지 못한 예총은 수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민예총이 특혜를 보았다는 ‘맬서스주의’의 무기를 휘둘렀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예술이 무슨 올림픽 경기인가? 문화예술은 기록을 재는 수치계량주의를 반대해야 하고, 인구비례 배분을 넘어서야 하지 않는가? 장관이나 이들이 모두 예술에 관해 천민자본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웃음을 받아 마땅하다.
어쨌거나 유인촌 장관이 활극 연기를 잘하는 것에 대해서만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지만 민예총이나 좌파 진영은 그런 연기를 하는 사람이 연예인은 될지 몰라도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민예총 소속의 예술가들은 정권의 향배에 목을 매고 지원금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부패한 예술가집단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민예총은 누가 장관이 되었다고 일희일비하지 않겠거니와 한 배우의 활극과 같은 단기 지속의 사건 사에 연연하지 않고 예술 창작과 예술 공공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인촌 장관, 정치권력의 하수인 노릇 그만 하고 무대에서 연기하기 바란다. (한겨레/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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