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몇 일 전부터 황사가 심해졌군요. 알레르기성 비염을 달고 사는 저로서는 달갑지 않은 불청객임에 분명합니다. 4월에 시작하곤 하더니 올해는 앞당겨 3월부터 시작되었군요. 이래저래 인간의 욕심이 망쳐놓은 ‘개발제일주의’가 가져다 준 패악임에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의해도 남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게 황사철만 되면 느끼는 화두입니다.
김 형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신교 목사나 신자들이 타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며, 상대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일방적으로 ‘예수 믿고 천당가라’고 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확신’이 있어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것을 보고 ‘광신’이라고도 하죠. 저 역시 그분들의 말에 수긍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당사자가 싫으면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게 예의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가진 철학이나 사상, 신념(종교)이 옳다 할지라도 남이 싫어하면 강제로 권하지 않는 게 너무나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억지로 해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게 교회(개신교)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자신의 가진 철학이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 과연 대중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것인가를 전혀 회의하지 않는 주체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양쪽을 조금씩이나마 아는 사람이기에 이런 걱정이나 고민이 부질없는 것은 아닐 줄 압니다. 목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신학적 업적 때문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역사와 해석’ 서문에서 이런 철학이나 신학(신앙)처럼 전혀 회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믿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경고를 했습니다. 성서가 이미 자명한 것으로 이해하지 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라’고 말이죠.
저 역시 그 분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안주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새로이 이해하고 해석하려 합니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때문에 내가 죽지 않으려고 말이죠. 지하철을 타면 지금도 ‘예수천당, 지옥불신’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워 고함지르는 사람들을 봅니다. 저는 그들을 향해 ‘이건 폭력’이라고 단호히 말을 합니다. 예수께서 전한 인간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저렇게 싸구려로 만드는 신자들을 보면 안쓰럽기만 합니다. 아니 그런 행위는 엄연한 폭력이죠. 물론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만든 목사들이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하겠지요.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면 안 될까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때가 너무 많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직접적인 폭력 못지않게 간접적인 폭력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줄 압니다. 이번 주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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