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아동 성폭행 가해자 21.4%가 근친이라고?

녹색세상 2008. 1. 17. 21:24
 


  “세상에 이런 일이….” 1월4일, 경기도 수원의 여중생 ㄱ양(13)이 친오빠와 친아버지에게 4년여간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다수 국민이 보인 반응이다. 오빠 ㄴ군은 경찰에 잡혔고 아버지 ㄷ씨는 도주했다. 이 사건을 다룬 각 언론은 ‘인면수심’ ‘패륜’ ‘변태부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놀랍게도 세상에 이런 일은 많다. ‘해바라기아동센터’(소장 최경숙)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센터가 한 해 동안 개입한 아동 성폭력 피해 사례 239건 중 51건이 ‘근친 성폭행’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강덕지 범죄심리과장은 “통계에 잡히는 게 20~30%이지, 실제 피해는 그 몇 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처럼 한 가정 내에서 두 명 이상이 가해자가 되는 ‘중복 성폭행’도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부연구위원은 “아버지가 딸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걸 알고 할아버지가 따라하는 등 근친 성폭행은 일찍 차단하지 않으면 지속ㆍ확대되는 사례가 많다”라고 말했다. 근친 성폭행 가해자 중 많은 이가 도덕성이 현저히 낮은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앓는다. 2005년 1월 한 아버지가 친딸 셋을 모두 성폭행했다. 그는 평소 상습으로 아내를 때리고 가정 밖에서도 범죄를 많이 저질렀다. 강 부연구위원은 “근친 성폭행 가해자들은 ‘자기 합리화’ 심리가 강해 피해자도 좋아했다고 말하는 등 죄책감을 잘 느끼지 않는 특징이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수원 여중생 근친 성폭행 피해 사건을 수사한 수원서부경찰서 이 아무개 경위는 “유치장에 하루 종일 누워 있으려니 힘들어 죽겠다는 둥 친오빠에게서 뉘우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근친 성폭행 피해자는 여러 겹의 고통을 겪는다. 몸에 남는 후유증은 물론이고 가장 믿었던 가족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도 오래간다. 가해자가 구속될 경우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망가졌다’라는 죄책감에도 시달린다. ‘가족이기에’ 고발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생각도 피해를 키운다. 이번 수원 여중생 사건도 4년간 지속된 뒤에 드러났다. 친구들 손에 끌려온 ㄱ양은 상담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야 말문을 열었다. 가족 구성원이 범죄를 눈치 챘다고 늘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아니다. ‘생계’가 걸린 탓이다. 아버지가 가해자인 경우 경제 자립 능력이 없는 어머니가 딸을 원망하기도 한다. 당장 살길이 막막해진 가족을 보호하는 ‘모자원’이 전국에 40여 개 있지만 3년이 지나면 나와야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 부연구위원은 “남은 식구에 대한 경제 지원이 뒷받침돼야 근친 성폭행 신고가 활성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 잃은 피해자 보호 대책 부족


 ▲근친 성폭행으로 인한 가족의 고통을 다룬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한 장면.

 

  하지만 ‘근친 성폭행 피해자’를 지원하는 체계는 아직까지 ‘원스톱’이 아니다. 가해자가 부친일 경우, 빠른 격리와 보호를 위해 친권을 박탈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 기관장에게도 친권 박탈 청구 권한이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검사에게만 권한이 있다. 복귀할 가정이 없는 피해자 대책도 부족하다. 수원 여중생 피해자 ㄱ양에게는 어머니와 할머니, 큰아버지가 있지만 모두 양육을 꺼린다. ㄱ양은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최대 1년간 보호받을 수 있지만 그 뒤로는 갈 곳이 없다. 여성가족부 인권보호팀 서영학 사무관은 “맡아줄 친척이 나타나지 않으면 피해자는 보육 시설로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사후 대책보다 중요한 건 ‘예방’이다. 이웃의 관심이 근친 성폭행 범죄를 막는다. 국과수 강덕지 과장은 “지구대 소속 경찰이나 사회복지사ㆍ통장ㆍ반장 등이 관할 구역 내 가정을 방문해 분위기를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매 사이에 벌어지는 성폭행은 ‘모방’이 많다. 수원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인 친오빠 ㄴ군은 인터넷에 퍼진 성인물을 자주 보고 따라했다. 수원 여중생 피해자 ㄱ양은 현재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맡겨져 연계된 원스톱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해당 센터 박 아무개 상담팀장은 “아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ㄱ양의 꿈은 가수다. 가수 중에서도 ‘댄스 가수’ 말고 ‘솔로 가수’가 되고 싶은데 목소리가 안 따라줘서 걱정이란다. 인면수심의 아버지와 오빠로 인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렸지만 집을 벗어나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이제 막 열세 살이 된 아이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자립할 수 있기까지 사회가 지원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이다. 해바라기아동센터 최지영 임상심리전문가는 “피해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게 학생 100명의 영어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들 수는 있지만, 진짜 건강한 사회라면 그걸 아까워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시사 IN/변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