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가해자로부터 온 뻔뻔한 전화

녹색세상 2008. 1. 15. 22:27
 

  월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전화가 오나 싶어 머뭇거리다 받았다. 폭력 가해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인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작년 추석 다음 날 지하철에서 주먹을 함부로 휘두른 노인네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사건화 시켜본들 전과자 만들기 밖에 더 하겠나 싶어 4개월이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 미루어 왔다. 피해자인 내 의도와는 달리 가해자는 ‘그런 것 가지고 그러느냐’는 아주 당당한 자세라 너무 화가 나 사건화 하기로 했다. 그것도 고소가 아닌 취하가 가능한 아닌 진정서로 수위를 낮추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특히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묵과해서는 안 된다.


  지하철 경찰대에 가서 가해자 조사를 받고 온 모양이다. ‘젊은 양반 이렇게 해야 하느냐. 주먹 휘두른 것 사과한다. 조금만 양보해 조율하자’고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은 어디에도 없고 ‘아는 것을 악용하는 못된 놈’이라며 ‘끝까지 해 보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것도 반말로 일관하면서. 남에서 손이 날아갈 정도로 고약한 성질 머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 뻔뻔함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막 가는 것 같아 ‘통화내용을 녹음 하겠다’고 하자 ‘이것 봐라. 아주 못된 짓 한다’며 할 테면 해 보라’고 떠든다. 평생을 남에게 큰 소리 치며 마음대로 살아온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무리 어린 생명이라 할지라도 때려서는 안 되건만 사십대 후반의 생면부지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폭력에 몸에 배어 자연스레 나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함부로 주먹이 올라온단 말인가. 조직내부에서 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으로 부터 들은 말이 떠올랐다.


“의자를 집어 던지며 온갖 쌍욕까지 해댄 것은 간데없고, 건성으로 마지못해 사과를 하면서도 미안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폭력 사실을 불미스럽게(?) 외부에 알리고 징계위원회에 제소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기분 나쁘다”고.


  피해자의 아픔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폭력 가해자들의 특성이 이리도 같은지 모르겠다. ‘폭력은 일회성이 아니라 습관성’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폭력에 젖어 있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분명하다. 가해자들의 후안무치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이래서 폭력에 둔하게 대처하면 안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인간은 바로 족쳐야 정신 차린다.’며 처음부터 강하게 대처하라는 조언을 듣지 않은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