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폭력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녹색세상 2008. 1. 9. 12:51
 

  작년 추석 다음 날 지하철 2호선을 탔는데 20대 초반의 젊은이와 60대 후반의 노인과 싸움이 벌어져 있었다. 여자 친구인 듯한 여성은 말리며 옆 칸으로 가자고 하고, 노인은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여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며 나무라고 있었다. 순간 그냥 두다가는 ‘노인네가 봉변당하겠구나’ 싶어 일단 젊은이를 달래 옆 칸으로 보냈다. 그랬는데도 분이 안 풀렸는지 계속 고함을 질렀다. 보아하니 술도 한잔 한 것 같은데 하는  행동이 나이 값을 못해 여간 꼴불견이 아니었다. (나도 술 취하면 그럴지 모르지만)

 

 ▲ 임형준-마동석 ‘불한당’에서 조폭 콤비 열연. 어떤 이유로도 폭력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계속 그러기에 ‘공공장소인 지하철에서 고함지르느냐’고 했더니 바로 달려와 ‘네가 뭘 안다고 까부느냐’며 멱살을 잡는 게 아닌가. 차림새를 보니 돈 푼깨나 있어 보이는 성질 고약한 노인네 같았다. 그래도 성질을 죽이고 ‘제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 반말 하시면 곤란합니다’고 하자 ‘그럼 난 칠십이다. 너 맞아 볼래’라는 말에 열 받아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떠드느냐. 한 번 때려보라’고 하자 바로 턱과 목에 주먹이 날아왔다. 아무리 성질 고약해도 나이가 있는데 설마 치겠나 싶었는데 정말 주먹이 날아와 바로 허리띠를 잡고 경대병원역에 끌어내려 ‘112에 신고’를 했다.


  “왜 때리느냐”고 따지자 ‘때린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미는데 순간 꼭지가 돌아버렸다. ‘젊은 양반, 술이 과해 실수를 했는데 미안하다’며 사과를 할 줄 알았는데 딱 잡아떼니 더 화가 났다. 역무실에 전화를 도움을 요청하자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좀 있다 경찰이 오자 태도는 더 달라져 주먹이 날아오던 그 성질은 간데없고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후안무치함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가 시인했으니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 경찰관의 말에 더러운 성질 머리의 노인네 꼬리는 더 내려갔다. 명절 끝이고 특별한 외상도 없고 해 간단한 기록만 하고 없던 걸로 하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목이 아파 주치의사에게 갔더니 ‘예전에 자전거 사고로 목을 다쳐 약해진 탓’이라며 주의하라고 해 치료를 받았다. 치료 기간이 길어져 만일에 대비해 진단서를 발부 받고 연락을 취했다. 답변이 너무 걸작이었다. 폭력 사실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 대신 ‘지금 와서 그러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투였다. 평생을 남들에게 큰 소리 치면서 살아온 탓인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숙이려 하지 않았다. 고무줄도 너무 탱탱하면 끊어질 우려가 있어 전화를 했더니 기다렸다는 반응이었다. 내용증명으로 답장을 조목조목 반박을 했으니 비싼 밥값 써가며 여러 군데 알아 본 모양이었다.


  만나자 아니나 다를까 다시 꼬리를 내리며 ‘합의하자’는 투의 말을 꺼냈다. ‘이 정도 당겼으면 됐다’ 싶어 진료비에 위로금 얼마로 조율하고 ‘합의서 작성하고 끝내자’고 했더니 ‘뭐 그런 걸 쓰느냐’며 극구 피해 ‘설마 또 뻥치겠나’ 싶어 그냥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치료비도 안 되는 돈만 들어오고 나머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싶어 그냥 두었는데 완전 함흥차사였다. 그래도 체면 세워준답시고 집 전화는 피해 휴대전화로 했더니 ‘몸 가지고 흥정한다’며 오히려 나무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럴 수 있나 싶어 더 화가 났다. ‘연말까지 정리하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최종 통보를 했다.


  비단 내가 겪은 것뿐만 아니라 폭력 사건 가해자 대부분이 ‘잘못했다’고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경우를 보지 못 했다. 그냥 건성으로 마지  못해 형식적인 사과는 할지라도 피해자의 처지에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피해자가 여성일 경우 그 상처의 깊이는 더 크고 심각하다. 만일 조직 내에서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가해자는 고개 쳐들고 할 짓 다하고 돌아다닌다. 서로 안면 받치고 하니 그런 일에 나서기 싫어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해결의 실마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럴 때의 침묵은 ‘죄악’일 뿐이고 ‘악의 편’에 선 것과 다를 바 없다. 가해자가 용서를 구할 수는 있으나 용서는 전적인 피해자의 몫이지 남이나 가해자가 들먹일 영역이 아니다. 폭력은 ‘폭력적인 문화’에서 나온다. 폭력적인 문화가 형성된 토대를 바로 잡거나 그 뿌리를 뽑지 않으면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폭력에 대해 눈감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일 뿐만 아니라 분명히 악의 편에 서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을 보고도 우리가 침묵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인류 최대의 스승 예수는 말했다. ‘인권’보다 더 소중한 논리와 철학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존재한다면 그건 분명히 사기다.


  폭력에 대해 둔감하다는 것은 폭력에 내성이 생겼음을 말해 준다. 더 둔해지면 감각 자체가 없어지고 만다. 피해자가 내 아내요 누이라도 그냥 넘어갈지, 내 딸이 당해도 모른 척 할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에 둔하면 안 된다. 특히 조직 내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폭력적인 문화는 아예 뽑아 버려야 구성원들이 편하다. 폭력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자. 폭력의 피해자가 내 가족이 되고 나도 될 수 있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깨달은 게 있다면 ‘폭력은 발생 즉시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자신도 편하고 남들에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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