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잘못이 있어 문제 제기를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손에 쥐고 있는 고소장 역시 마찬가지고. 문제는 피해자는 움츠려 들어 2차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가해자는 뻔뻔하게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혼자 하는 양 떠들어 대고, 폭력 사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기 일쑤고. 피해자에 대한 위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세상 만들지 않기 위해 땀 흘려 온 사람들이건만 자기와 직접 얽히는 것은 모두들 피하려 한다. 누구의 말처럼 ‘실명비판’은 하지 않고 ‘두루뭉실’ 몇 마디하고는 만다. 그러고는 ‘비판적인 먹물’입네 생색을 내면서.
이것은 참된 진보의 모습이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자신에 대해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이 없는 진보는 참된 진보라 할 수 없다. 진보를 빙자하난 새로운 파쇼일 뿐이지. 내가 져야할 많은 짐, 내가 풀어야만 하는 얽힌 실타래는 당연히 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다가올지 모르는 비난도 감수하자. 난 문제를 제기한 문제 제기자 일 뿐 판단은 다른 곳의 몫이니까. 그것까지 걱정한다면 입도 못 떼며 살 수 밖에 없다.
폭력 사건도 상대가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둘 수 없으니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고, 이만큼 양보했으면 됐지 더 이상 양보할 게 지금으로선 없다. 다만 상대가 무리하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 체면 세워준다고 귀가 시간 전에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겨도 묵묵부답이다. 일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오만하기 그지없다. 사건화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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