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한숨
7일 정오 삼청동 대통령 인수위 건물 앞은 한창 시끄러웠다. 인수위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기륭분회 조합원이 정문에 배치된 경찰들에 의해 밀려 쫓겨났다. 경찰은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면 안 된다, 자진해서 다른 곳에서 시위를 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단다. 물리력 행사만이 존재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조합원은 “뭐하는 거냐”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할 때도 이러진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전경 50여명에 의해 둘러싸인 채 40분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정문에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플랜카드를 펼치고 다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혹자는 권력이동이라고 한다. 청와대에서 인수위로.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이명박 당선인으로. 연일 발표되고 있는 인수위의 정책들과 이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을 볼 때면 그것을 실감케 한다. 그래서인지 각종 집회나 기자회견도 청와대가 아닌 인수위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미 인수위 앞에서는 GM대우 비정규지회 등 많은 단체 및 노조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7일, 인수위 앞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모였다. 새해 첫날부터 서울 5개 지역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코스콤 비정규지부, 4년째 거리에서 농성 중인 기륭전자 분회, 그리고 GM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고공농성 중인 GM대우 비정규지회... 각기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명박 당선인에게 호소하고 이 사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기륭, “기대도 안했지만 벌써부터 이럴 줄은....”
40분을 넘게 경찰들에 의해 둘러싸였던 오석순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은 “솔직히 기대도 안했지만 오늘 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녀는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을 시작도 하기 전, 혹시나 하는 환상을 깨줬다”며 너무 일찍 실체를 보는 거 같아 기분이 안 좋다고 토로했다. 그는 “새로운 대통령에게 우리의 사실을 알리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며 “우린 이명박 당선인을 비방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단지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1인 시위를 하는데 경찰이 이런 식으로 제재를 가한 것은 문제라는 것.
현재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정규직,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4년째 농성 중이다. 이미 여러 차례 사장도 바뀌었다. 하지만 번번이 이들의 요구를 외면해왔다. 작년 10월, 또 다시 사장이 바꿨다. 별 기대를 하진 않았다. 늘 자신들의 문제를 회피해왔던 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주 교섭에서 회사 측은 이번 주까지 회사안을 내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 번도 사측으로부터 교섭안을 받은 적이 없었던 이들에겐 의외의 전개였다.
그녀는 “교섭에 대해 조합원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며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들의 조합원이 현재 40명인데 이들을 직접 고용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교섭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단다. 그녀는 “힘들어도 어쩌겠나. 여태까지 싸워온 게 아까워서 안 된다”며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간단다.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GM대우, “혹시나 했지만 이렇게 문전박대를 하다니....”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이준삼 GM대우 비정규지회 조합원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이명박 당선인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문전박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씁쓸해 했다. 그와 함께 교대로 1인 시위를 하던 조혜연 조합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단지 노조 만들었다고 35명이 해고됐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이명박 당선인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고 약속했으니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다”며 “단지 살기 위해 싸운 죄밖에 없는데 잘렸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작년 12월 24일 3명의 조합원이 복직판정을 받았다. 인력이 필요 없다고 잘랐지만 알고 보니 알바를 고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 하나하나가 이들에겐 큰 힘이 되었다. 자신들의 싸움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공장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해고자 신분이다. 그는 “GM대우 공장 안에서는 할 일이 없다. 이미 해고되어 회사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며 답답한 마음을 이명박 당선인에게라도 알리고자 이렇게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전에는 인수위와 미 대사관 앞에서, 오후에는 서울역 GM대우 전시관에서 1인 시위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코스콤 비정규지부, “이명박 당선인에게 기대가 없다면 거짓”
코스콤 비정규지부 황병화 조합원은 미치겠단다. 벌써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서 먹고 잔지 4개월이 지나갔다. 코스콤에 매일 교섭 요청 공문을 보내지만 코스콤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는 “밑 뚫린 독에 물 붓기 같다”며 “공문이 가면 뭔가 대답이라도 와야 하는데 회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해 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건 이명박 당선인이 나서서 회사 측이 교섭에 임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황병화씨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많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후보 때 말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고 언급했다.
추운 날씨에 집에도 못가고 농성장을 지키며 1인 시위를 하는 코스콤 비정규지부. 하지만 어떠하겠나.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는 것을. 그는 “우리가 모여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춥기야 춥지만 계속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인수위에 줄을 대기 위해 인수위원들과 이명박 당선인 측근들에게 온갖 로비가 난무한다고 한다. 인수위 정문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결국은 인수위에 줄을 대기 위해 로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문제를 위해 이명박 당선인이 나서줄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당선인의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인수위에서 연일 쏟아지는 새로운 정책들. 하지만 그 안에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들에게 해법을 내려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중의 소리/허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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