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한 줌의 재로 변한 ‘일용직 남매’의 꿈

녹색세상 2008. 1. 8. 21:28
 

일용노동자 고 최용춘씨, “쌍둥이랑 다 모여서 살자더니....”


“쌍둥이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 불에 타버린 거야! 돈 벌어서 같이 잘 살자더니....”


“여기가 어딘데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죽어! 자기 자식들 불쌍해서 어떻게 눈을 감았어! 얼굴도 못 봤는데, 떠나면 누나는 어떻게 하라고…”

 

 

  흰 국화꽃에 둘러싸인 동생의 이름 최용춘을 보자 누나 최옥희씨는 그대로 허물어졌다. 눈물 섞인 통곡이 한동안 이어졌다. 사망한 최씨의 위패는 지금 이천시 시민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있다. 사망한 최씨에게는 7살 쌍둥이가 있다. 딸과 아들 이란성 쌍둥이다. 전북 고창 집에 있는 쌍둥이들은 현재 아버지의 사망을 모르고 있다. 전기 관련 일을 하는 최씨는 주로 지방을 떠돌며 일했다. 쌍둥이는 지금까지 누나와 형수가 돌아가면서 키웠다. 엄마는 쌍둥이가 돌이 지날 즈음 집을 떠났다. 쌍둥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누나 최옥희씨가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건 한 달 전이다. 동생은 지난 주말에도 고향 고창에 들렀지만 떠나는 뒷모습만 봤을 뿐이다. 최옥희씨는 "동생이 돈 많이 벌어서 같이 함께 살자고 자주 이야기했다"며 "그것이 동생이 갖고 있던 꿈이었다"고 밝혔다. 최옥희씨는 지금 빨리 동생의 시신을 찾고 싶어 한다. 최씨는 "동생은 오른쪽 발이 안쪽으로 꺾여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발만 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최옥희씨는 일용직으로 식당 등에서 일하고 있다. 사망한 동생 역시 일용직 노동자였다. 함께 살고 싶었던 '일용직' 남매의 꿈은 동생이 사망하면서 한 줌의 재가 됐다.


중국동포 고 이성복씨 “1년 반만 더 일하고 돌아가자고 했는데....”

 

 

  조선족 이성화씨는 초조한 눈빛으로 이천시 시민회관 강당 벽에 붙은 종이 한 장을 바라봤다. 잠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답답한 듯 옆에 있던 기자에게 물었다. 


“내 동생도 화재 현장에서 죽었다는데, 왜 명단에 없어요?”


  벽에 붙은 종이를 바라봤다. 총 10명의 사망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망자 40명 중 신원이 밝혀진 이들이다. 이씨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이씨는 곧바로 벽에 얼굴을 대고 흐느꼈다. 무슨 말인가를 했는데, 발음이 부정확했다. 울음 속에는 중국말과 한국말이 섞여 있었다. 이씨의 동생 이름은 이성복이다. 이씨는 중국 지린성에 살다가 2006년 부인 임춘원씨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둘은 사고 현장에서 함께 일하다가 변을 당했다. 부인 임씨는 전신화상을 입고 현재 강남 베스티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누나 이성화씨가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 7월이다. 그 때 동생은 누나에게 “1년 6개월만 더 벌어서 중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성화씨는 “중국에는 일자리가 별로 없어 힘들게 들어왔는데, 동생은 먼 곳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울먹였다.


  이성화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1년이 됐다. 이씨는 식당 등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그러나 최근엔 몸이 아파 그나마도 못하고 있다. 이씨는 “없는 사람들은 국경을 막론하고 어딜 가든 고생”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7일 발생한 사고현장에서 사망한 중국동포는 모두 13명이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도 한 명 사망했다. 이 외국인 노동자의 위패는 합동분향소에도 없다. 이천시 사고대책 본부는 “아직 정확한 이름을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밝히고 있다. 합동분향소에는 오전부터 통곡과 흐느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박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