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평가기고-민주노동당을 위한 제언
민주노동당의 대선결과를 놓고 그동안에 잠재된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하다. 해묵은 정파갈등에서 나오는 정치공세들로 당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뜨겁다. 그러나 제기되는 내용은 매우 편협하고 답답한 내용이다. 한편에서는 소위 주사파가 당을 망쳐놓았기 때문에 분당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위 민중경선제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낮은 지지율이 나왔다고 한다. 서로 상대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러한 식의 논의는 당의 혁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영길 후보를 비롯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19일 대선 결과를 지켜보며 참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코리아연방공화국 슬로건 때문에 대선결과가 참혹했다는 얘기도 있다.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쌈빡한 대선 슬로건을 개발해서 전면에 내걸었다면 획기적인 득표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선거를 모르거나 순진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대중들이 이명박의 슬로건과 공약을 보고 지지하고 투표했다는 말이 성립된다. 과연 그런가? 민중경선제를 실시하지 않아서 대선결과가 저조했다는 평도 있다. 전에 다른 글에서 필자가 언급을 한 적도 있지만 대중들에게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한 표를 준다고 해서 당과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다.
우려하는 부분은 오히려 다른 곳이 있다. 선거결과를 놓고 잘잘못을 가리고 갑론을박하는 내용조차도 선거운동 그 자체에만 머무른다는 점이다. ‘후보 잘못 선출했다’, ‘슬로건이 잘못됐다’, ‘민중경선제를 안 해서 그렇다’ 등의 내용은 결국 선거운동을 잘못해서 대선결과가 나빴다는 말들이다. 우리가 선거운동만 잘하면 세상 바꿀 수 있는가? 그러면 우리 변혁운동세력의 일상 활동은 1년 365일 ‘선거를 어떻게 잘 치를 것인가’ 만을 연구하면 된다. 그렇다. 어느덧 우리는 선거주의자가 되어버렸다. 누차 강조하지만 선거 시기는 수확의 시기이다. 그동안 해온 활동을 평가받고 결과를 추수하는 때인데, 우리는 그런 수확의 시기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씨를 뿌리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일상 활동도 없는 상태에서, 선거 시기에 들어서야 씨를 뿌리고 나서 바로 풍성한 수확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대선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선거기간 이전의 우리의 일상 활동과 당의 운영방식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일상 활동이 대중들의 마음속에 전혀 다가서지 못했고 감동을 주지 못한 것이 이번 대선패배의 제일 큰 원인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면서 잘잘못을 가리려고 하는 것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후에 당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선거운동 시기의 잘잘못을 가리고 미봉하기만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이번의 대선참패가 민주노동당에게 약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당의 모습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이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당의 미래는 없다.
향후 민주노동당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며, 그 방향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좀 더 ‘변혁적’이고 좀 더 ‘대중적’으로.
의회주의를 넘어서 변혁적 정당으로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의 18일 밤 마지막 유세에 모인 지지자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성적표가 좋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평가를 하면 항상 가장 의정활동을 잘한 의원들로 손꼽힌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대선에서 3.0%의 지지를 얻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훌륭한(?) 의정활동은 민주노동당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대중들이 의정활동을 보는 시각과 시민단체가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평가라는 것들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좋은 법안 발의를 얼마나 많이 하고 국회일정에 얼마나 부지런히 참석하느냐는 식의 것들이다. 이 얼마나 착하고 길들여진 부르주아 의원의 모습인가? 그렇다. 자본주의 의회 틀 안에서 모범생처럼 활동하는 모습을 평가하는 시민단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최고로 인정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평가는 시민단체와는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다른 부르주아 정당의 의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있어서 국회의원이란 것은 별개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과연 부르주아 의회가 짜놓은 일정들이 대중들의 투쟁의 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가? 성명서 낭독하고 기자회견 열고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로 기사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가? 통과되지도 않는 법안들의 문구나 다듬어서 문서놀음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들의 교육자, 선전자, 조직자가 되어야 할 우리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은 왜 시민단체에서 잘했다고 칭찬받는 잘 길들여진 착한(?) 의원들이 되었는가? 국회의원의 의회활동과 민중들의 대중투쟁이 결합된 ‘거대한 소수’ 전략은 ‘거대한 다수’로 가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당의 통제와 지도에서 독립되어 있는 구조 때문이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당 지도부가 의원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의회활동이 당에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는다. 이 잘못된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지금과 같은 의회주의에 경도된 의원활동을 통제할 수가 없다. 당은 이러한 의회주의 경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당과 의원단과의 관계를 근본부터 새로이 설정하는 고민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구체적인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몇 가지 제안을 하자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우선 현재 의원단 산하에 있는 의정기획 기능을 중앙당으로 옮겨야 한다. 의정기획 자체를 당에서 틀어쥐고 있어야 의원에 대한 지도와 통제가 가능하다. 전체 운동적 관점에서 전략을 세우고 의원들의 활동을 그에 맞게 전술적으로 배치하기 위해서는 의정기획 기능을 당에서 틀어줘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또한, 당의 인력과 자원의 배치가 의정지원 쪽에 심하게 경도되어 있는 부분을 고쳐야 한다. 의원단을 지원하는 보좌관과, 의원단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데 대부분의 역량을 할애하는 정책위원회에는 많은 돈과 인력이 배치되어 있지만, 10만 당원을 교육하는 중앙연수원은 상근자 2명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현실이다. 돈대고 사람 대는 곳이 가장 중요한 사업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10만 당원의 교육은 방치해놓고 9명 의원단을 지원하는 것에 당의 대부분의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이 어찌 의회주의 정당이 아니란 말인가! 과도하게 의회활동 지원에 경도되어 있는 당의 인력과 자원을 당원교육 및 선전 조직사업에 적절하게 재배치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당직 공직 겸임을 금지해야 한다. 필자는 당직 공직 겸임 금지가 진보정당의 그 무슨 철의 원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당이 의원수가 많으면 굳이 겸임을 금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의원수도 적은 상황에서 당직 공직 겸임 금지를 풀어버리면 실질적으로 의원들이 당의 대표, 사무총장 등 주요한 공직을 겸임할 가능성이 높은데, 물리적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챙길 수도 없을뿐더러 지금의 당 운영 모습을 보았을 때 당 활동 자체도 의회중심으로 경도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정치연구소나 정책위원회에서 의정지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나열식의 정책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당의 연구역량을 상당부분 집권전략과 새로운 국가비전을 세우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게는 법안 문구나 다듬고 현실적이고 세련되게 보이는 정책들을 만드는 활동이 절실한 것이 아니다. 사회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실천전략과 전술을 내 올수 있는 연구가 민주노동당에게는 절실하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 각 분야의 진보적 학자 및 지식인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연구 성과가 활동가들의 실천과 이어질 수 있는 연결망을 구축해야 한다.
조직을 정비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자
민주노동당은 다수 대중의 이익을 위한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대중들과 함께 하는 사업을 힘 있게 벌여내지 못했다. 대중사업을 힘 있게 벌이기 위해서는 소수의 활동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당원을 대중사업의 주체로 새워내지 않고서는 어떤 사업도 성과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그런데, 지역의 상황을 보면 당의 세포조직이라 할 수 있는 분회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지역의 활동가들이 분회 활동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당원의 참여를 끌어내고 당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분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의 지침대로 분회를 운영하지만 당원들의 참여가 너무나 저조할뿐더러, 모였다고 하더라도 분회 활동을 위해 준비된 내용은 빈약하다. 지금의 당의 조직형태로는 분회 활동은 절대 활성화될 수 없다.
문제는 바로 당원제도에 있다.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가입해서 당비 3개월만 빼먹지 않고 내면 된다. 주변의 권유로 큰 고민이 없이 당원에 가입해서 자동이체로 당비만 빠져나가면 당원이 된다. 당원으로서 받아야 할 필수교육도 없고 당 활동에 참여해야할 의무도 실질적으로 없다. 그러다보니 당원으로서의 활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시민단체 회원수준 밖에 안 되는 당원제도로 10만 명을 모은다고 해서 과연 그 10만 명이 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 할 것인가? 분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지금 분회의 위기는 바로 그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지금이라도 예비당원제를 도입해서 당원에 가입한 후 소정의 교육을 이수했을 때 당권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을 이수하기 전에는 예비당원으로서 당권을 유보하는 것이다. 혹자는 예비당원제를 두고 불필요하게 문턱을 높여서 대중정당으로서의 성격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우려는 기우라고 말하고 싶다. 당으로서는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기 전의 예비당원들에게 당원이 될 수 있는 기회로서 교육기회를 제공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예비당원들은 이러한 교육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당 활동에 함께하게 된다. 활동당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 평등 교육이 우려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실행되고 있는 것은 예비당원제가 문턱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기우라는 점을 증명한다. 오히려 당원 교육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당 활동에 대한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당원제도가 정비가 되었을 때 분회도 정상화 될 수 있고 당원을 대중사업의 주체로 세울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지금의 당원제도로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체력만 낭비하고 지치게 된다. 당원제도를 정비한 후에는 역량과 조건에 맞게 지역조직과 부문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조직정비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당 내외의 다양한 모범적 대중사업 사례를 수집하고 공유하여 이것을 각급 당부에서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국내 모델뿐만 아니라 해외의 모델이라도 배울만한 것들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직정비를 통해 당원을 주체로 세우고, 사례조사를 통해 대중사업의 모델을 만들어 대중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당이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끝으로 당부하자면 당은 인터넷 공간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를 바란다. 사회의 변화가 가장 민감해야 할 진보정당이 부르주아 보수 정당들보다도 인터넷 공간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점이다. 우리는 항상 대중 속에 들어가서 대중들과 함께 해야 한다. 최근의 언론 기사를 보면 네티즌이 하루 평균 4시간 씩 인터넷 공간을 드나든다고 한다. 이 대중의 바다에 우리가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을 할 것인가? 말로만 ‘누리사랑방(블로그)을 이용한 선거’를 외치지 말고 직접 블로거가 되어 운영부터 해야 한다. 모든 당직자와 상근자, 활동가들은 당장 누리사랑방을 만들어 하루 한 번은 꼭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민주노동당에게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를 바란다. (민중의 소리/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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