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이명박 특검과 한국민주주의의 과제

녹색세상 2007. 12. 18. 18:02
 

검찰이 해체한 BBK뇌관, 동영상이 되살려


  선거를 3일 앞두고 공개된 이명박 후보의 2000년 10월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대선 판도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검찰의 이 후보에 대한 면죄부 주기식 수사 발표로 해체된 듯이 보였던 BBK 뇌관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영상에 대한 국민 반응이 심상치 않자 눈치 빠른 노무현 대통령은 BBK 사건 재수사 지휘권 검토를 지시했다. 이어 일요일 저녁 3차 대선후보 합동 TV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이명박 후보가 특검 수용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제 공은 특검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거운동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앞에서 이명박 후보를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통합신당이 제출한 특검법의 정식 명칭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이 17일 또는 18일 중에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의 법안 공표에 최장 15일, 특검 임명 10일, 준비기간 10일, 수사기간 40일 등 길어도 75일 이내에 수사 결과가 나오게 된다. 차기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2월 25일 전에 수사가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검이라는 변수는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BBK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보다는 연관된 각 정치세력들마다 철저한 정략적 이해타산 아래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검 둘러싼 정치권의 석연찮은 움직임


  우선 통합신당을 비롯한 각 정당의 특검 추진 배경에는 특검법안을 내년 총선용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정치적 판단이 다분하다. 새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치러질 총선 재료로 BBK사건을 써먹으려는 포석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정당은 없다. 노 대통령이 BBK 사건 재수사를 지시하면서 뒤늦게 특검을 수용하는 태도로 선회한 과정도 영 개운치 않다. 지난 5일 검찰 수사 발표 이후 국민 절반 이상이 수사결과를 불신하는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입을 굳게 다물어 왔다.


  정동영 후보 측이 청와대에 검찰 직무감찰권 행사를 요구하자 청와대는 “검찰의 수사에 대해서 논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을 회피했고 법무부장관은 “공정하게 수사했다”며 일축해 버리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상황이다. 세간에 삼성특검의 수사 대상이 될 처지인 노 대통령과 BBK 사건으로 몰린 이명박 후보 간에 ‘노명박’ 연대설이 나돈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우선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상황인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일요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 후보는 동영상 공개에 대해 ‘공작 정치’를 운운하며 ‘관련자 처벌’을 강하게 주문하는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투표율과 이명박 득표율, 향후 특검에 영향


  이처럼 정치권이 제각각 당리당략에 급급한 상황에서 향후 특검 전개는 무엇보다 19일 선거 결과에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국민이 원하는 의제가 실종된 채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때보다 기권이 많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경우 낮은 투표율에 고정 지지층이 가장 확실한 이명박 후보의 압승이 예상되던 상황이다.


  물론 선거 막판의 동영상 변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보수화를 막을 확실한 대항 주자가 떠오르지 않은 탓에 당선자 윤곽이 달라질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 않다. 이명박 후보가 높은 득표율로 압승하면 특검은 이명박 시대 하에서의 각 정치세력 간 이해득실에 따른 지분 싸움과 물밑 거래로 의미가 변질될 공산이 크다. 당장 특별검사의 추천권자는 대법원장이고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추천권자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 간주되는 인물이자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사건의 1심 변호인이었다. 특별검사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스스로 주도적으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었고 광운대 동영상 공개 전까지 ‘노명박 연대’의 의혹을 받고 있던 당사자다.


  결국 특검의 정략화나 정치적 야합 가능성을 봉쇄하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적극적 참여와 감시의 발동이다. 19일 투표율을 높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투표 참가율이 높을수록 그리고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이 적으면 적을수록 선거 후 진행될 특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감시의 눈길이 매서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는 사표 심리의 부담에서 가장 자유로운 선거라 할 수 있다. 투표는 19일에 끝나지만 대선 본선전은 이날부터 시작이다. 야합과 혼돈, 경제적 불평등과 국민 배제의 신자유주의식 정치를 심판하고 새 시대 민주주의의 과제를 열어갈 국민의 참여는 이날부터 새로이 깃발을 올린다. (손석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