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내세운 자들 가혹하게 문책해야
17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며, 이명박 경제담론의 승리라는 일반의 평가는 매우 옳다. 대중의 관심사가 단연 민생인 가운데 여권의 BBK 문제 집착이 패착을 둔 것이며, 삼성에 나라를 통째 팔아넘긴 총체적 부패의 여권이 그나마 도덕적 변별력마저 상실했다는 평가 역시 옳다. 평자들이 짚지 않은 몇 가지만 더 지적해보겠다. 이명박의 성공은 그의 ‘경제인’ 전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민’ 이미지에서도 연유한다. 정동영이 ‘개성 동영’이라는 별 감흥도 없는 이미지에 빠져 허우적댈 때, 이명박은 국밥을 먹으며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일을 하려는지 일관된 이미지와 메시지로 전파했다.
▲ 선거운동 중 대전의 시장 국밥집에 들른 이명박 (사진=뉴시스)
주요 후보들이 참가하는 대중연설과 대중토론회를 몇 차례 구경했는데, 그런 자리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이명박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문국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교회 목사처럼 일방적으로 전달했고, 정동영은 아주 매끄러운 솜씨로, 권영길은 조금 더듬거리는 투로 대의를 역설했지만 그들의 언어는 운동권과 인텔리의 것이었다. 이에 비해 이명박의 말은 그런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문국현과 정동영과 권영길의 것처럼 훌륭한 설교나 열띤 연설이 아니라, 청객과 감정을 주고받는 대화였다.
말이 통하는 이명박
물론 요즘의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의 대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많은 사람이 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명박의 서민적 대화투가 형성된 배경은 그의 선거운동 전반에 그대로 관철되었고, 유권자의 욕구에 부합하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명박이 승리한 것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서민’이나 ‘민생’에 그가 가장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사회적 배경도 간과할 수 없다. 대선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의 해로는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김대중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난 1997년, 그리고 이명박이 승리한 올해를 꼽을 수 있다. 이 세 시기는 빈부격차가 심화된 직후이거나 경제위기가 닥친 상황이라는 경제사회적 공통점을 가진다.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지 의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그것에 독립적 역할을 부여하자면 사회경제적 기회와 수혜의 균등을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이에 다르지 않으니, 민주주의를 심리나 관념의 위안거리 삼는 것은 막걸리 거나하게 걸치고 ‘타는 목마름으로’ 부를 때 정도이지, 하루 중 23시간 55분쯤의 민주주의란 ‘우리도 뭔가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것’,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87년과 97년, 07년의 앞 몇 년 동안 없이 사는 이들이 더 힘들어졌다는 것은 민중에게는 ‘뭘 하든 되지 않는다’는 경험 확신이고, 그런 민주주의가 타파되거나 교체되는 것이 정의다. 민중에게는 그것이 도덕이고 정치다.
민주노동당, 02년 50배, 04년 80배, 07년은 9배
권영길로 인한 민주노동당의 몰락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대선 때보다 20만 표 부족하다는 평가는 뭔가 숨기는 것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16대 대선에서는 당원 수보다 50배의 표를 얻었고, 2004년 총선에서는 80배를 얻었다. 16대 대선만큼만 했다면 이번 대선에서 380만 표쯤 얻었어야 하지만, 실제 얻은 표는 당원 수의 아홉 배밖에 안 됐고, 그 성과를 지수화하면 16대 대선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선거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선거는 일상적 정치활동의 누적, 시의적절하고 명징한 정치 선전, 정치 메시지와 일치하고 잘 전파할 수 있는 후보의 총합물이다.
성장하고 도전하는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권영길을 후보로 내세운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는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노쇠하여 기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텔레비전토론에서 보여줬다. 지난 대선 때에는 권영길 돌풍이 일었지만, 노회찬이나 심상정 같은 정치인들에게 눈높이가 맞춰진 유권자들은 ‘누가 토론을 잘 했는가’라는 설문에 딱 3%만이 권영길이 잘했다고 답했다. 경선에서 권영길에게 투표한 52%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패배감과 자책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과 정치에 대해 잘 알면서도 권영길을 출마시킨 김창현과 주대환, 최규엽과 박용진 같은 이들의 어거지와 오판, 무능에 대한 문책은 가혹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무엇을 말했는가? 코리아연방공화국? 그것은 당내 반발과 ‘허경영’ 취급하는 언론의 공세 속에 사라졌다.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그런 추상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을 내세운 파퓰리즘적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묵언계를 실천했다. 대신 그들은 논두렁을 찾는 70년대 박정희식 만인보와 큰 데모 한판 하는 80년대 운동권식 민중대회로 대통령선거를 모면하려 했다. 민주노동당에 조금이라도 있어본 사람이라면 역대 선거에서 개표구별 득표와 그곳에 거주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숫자가 15~20% 정도 겹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무지하고 무능한 민주노동당 집행부는, 데모대 백만 명을 모아봐야 민주노동당으로는 20만 표쯤밖에 안 온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당을 가두주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열 명이 국회에 들어갔다고 당장 돈 몇 푼 더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은 민중들이 더 잘 안다. 열 명이면 열 명답게, 진보정당이면 진보정당답게, 다른 나라 사회민주당과 노동당의 지도자들이 의회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사자후를 던졌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더러는 실력 있는 개혁정책 전문가로, 더러는 5선이나 총리급 대우를 받는 거물로, 더러는 열린우리당에서 지침을 받아오는 ‘간첩’으로 봉사했다. 그 자연스런 귀결이 바로 ‘2중대’고, 자유주의자들과의 동반 몰락이다.
경선 연기 자충수
민주노동당의 패배는 비겁한 자들의 패배다. 당의 기획 단위와 외부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후보 조기 선출을 주장했음에도 권영길 지지 세력은 노회찬에게 두 배나 뒤지는 지지율을 조직력으로 상쇄할 시간을 벌기 위해 경선을 늦췄다. 그 사이 좌고우면하던 문국현이 틈새시장을 선점했다. 한국노총의 지지를 얻으려면 민주노총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오랜 노력을 기울여야지, 눈 앞 선거에서 알량한 몇 표 더 얻어 볼까 삼고초려하며 비겁하게 투기하였다. 삼성 비리에 마냥 흥분하는 듯하더니, BBK에 생사 건 자유주의자들 싸움에 옳다구나 촛불 들고 따라 나섰다.
자유주의 정당들과 언론들과 단체들은, 그리고 민주노동당조차도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과거로의 복귀가 아닐까 걱정한다. 그런데 민중들의 삶은 이미 과거로 돌아간 지 오래다. 이번 대선 결과는 과거로 후퇴한 민중 삶의 정치적 반영이다. 민중들의 삶이 아니라 대통령 자리나 걱정하는 자들이 쫓겨나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저희들 잘못한 걸 “국민이 노망들었다” 탓하는 비겁한 자들이 내쳐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민주노동당의 미래와 제 몫 비례국회의원 자리를 맞바꾼 비겁한 자들이 며칠이라도 조용할 테니, 그것 역시 다행이다. (레디앙/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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